[돋을새김] 한국형 극우정당의 탄생

입력 2024-12-17 00:38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기다리다가 계엄사령부 포고령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읽는 것으로 한 해가 마무리될 줄 누가 알았을까.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지난 2주간의 초현실적 혼돈 속에서도 나는 대체로 낙관적이고 명랑했던 것 같다. 주변 지인들도 그랬다. 어쨌든 해결되지 않겠어? 이제 와서 우리가 어떻게 1980년대로 돌아가겠어? 다들 그렇게 믿었고, 집단적 믿음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됐다. 돌이켜보니 제법 합리적인 전망이었다. 웃픈 얘기지만 계엄과 탄핵은 중장년층에게는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오래된 문제다. 12·12 쿠데타와 5공 시대를 겪은 그들이 역사를 다시 써볼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 같은가. 실제 이번 사태에서 5060세대는 가장 빠르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시민사회 역량도 마지막 비상계엄 이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사회 각 분야 시민의식의 성숙 역시 빠뜨릴 수 없다. 과거 군·경이 국가폭력의 일방적 가해자였다면 지금 그들 각자는 시민적 정체성을 내면화한 한 명의 시민이다. 마지막 순간 유혈충돌을 막은 것도 계엄군이 군복 안에 간직한 내면의 시민, 그런 변화 덕분이었을까. 상황은 모두의 기대대로 풀려갔다.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대통령 탄핵안도 지난 주말 무사히 국회를 통과했다.

찬성 204표 대 반대 85표. 가결 발표와 함께 국회 앞 시위대에서는 기쁨과 함께 실망이 번졌다. 국민의힘에서 나온 탄핵 찬성표가 고작 12표라니. 이 말은 나머지 압도적 다수가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편에 섰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군의 국회 침탈을 옹호한 셈. 그간 그 당이 부르짖어온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었다. 이런 투표 결과는 여야 대립이나 교착 같은 단기 후유증을 넘어서는, 어렵고 불길한 문제를 예고한다. 주류 정당을 집어삼킨 극우의 부상, 뒤집자면 보수의 멸종이다.

무기명 반대표 85개의 성격을 하나씩 따지기는 어렵다. 다만 그들의 반대는 신념이라기보다 생존 본능의 발로, 혹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소속 집단의 확인’ 과정으로 해석된다. 판단은 단순해 보인다.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 다수는 보수의 지지기반이 돼줄 리 없다. 남은 건 극단적 우파. 그들을 향해 ‘저는 당신들과 같은 집단 소속입니다’라는 신호를 발신한 게 반대투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살기 위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집단으로서 보수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린다. 서식지가 줄어드는 멸종위기종처럼 보수가 극우만을 바라보는 순간, 그들의 지지층은 진짜 한줌 극우로 쪼그라들게 된다. 이제 귀결은 하나. 아스팔트 극우와 보수 정치인이 한몸이 된 극우정당의 탄생이다.

앞으로 ‘내란죄 피의자’의 황당한 논리는 극우에 잠식된 보수 정당을 숙주로 활개칠 거다. 마치 진실 여부를 따져볼 만한 합리적 주장인 양. ‘아무도 안 다쳤으니 계엄은 합법’이라거나 ‘대통령 노력 덕에 사상자가 없었다’는 궤변,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에는 원래 한계가 없다’거나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식의 반헌법적인 주장. 피아는 식별됐다. 그러니 눈치볼 것도 없다. 체제를 공격한 피의자의 사적 망상은 여당 의원들을 스피커 삼아 공론장을 유령처럼 떠돌아다닐 거다.

솔직히 비상계엄이 통치행위라고 말하는 이들을 극우로 분류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아니면 한국형 극우라고 불러야 할까. 탄핵소추된 대통령이 조만간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론하겠다고 한다. 체제 안에서 체제를 공격하고는, 불리해지자 자신이 공격한 그 체제의 보호를 맹렬하게 요구하는 사람. 체제의 뿌리를 흔들고는 이제 와서 헌법기관인 헌재를 반격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벼르는 사람. 그를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