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같은 서점

입력 2024-12-21 00:33

한림원 종신회원 엘렌 맛손은 스웨덴의 독자에게 한강의 소설 두 권을 추천했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한강의 삶이 광주로부터 시작한 데다 두 작품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국내 독자들도 광주 5·18과 제주 4·3 관련서를 찾아 읽는 분위기다.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설에서 했던 한강의 말처럼 “작별할 수 없는 것과 작별하지 않을 때”에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세계가 가능하지 않겠나.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적었다. 자신이 아는 좁은 세계를 부수는 책을 만날 때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다. 카프카의 말처럼 1970~80년대 청년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책들은 ‘도끼 같은 책’이었다.

집권에 눈이 먼 독재정권은 이런 책을 판매 금지했지만, 사회과학 서점을 통해 유통됐다. 사회과학 서점은 비판적 지식에 목이 마른 이들에게 수원지이자 학습 공간 역할을 했다.

광주의 사회과학 서점은 민중 시인 김남주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1975년 11월 ‘카프카서점’을 열었다. 1975년이 어떤 시절인가. 그해 4월 인혁당 관련자 등 8명의 사형이 집행됐고, 5월에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됐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카프카서점은 2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광주 사회과학 서점의 명맥은 김상윤에게로 이어진다.

1977년 9월 김상윤은 계림동 헌책방 거리에서 ‘녹두서점’을 시작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하다 나온 직후였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서점을 하는 척했지만 목적은 따로 있었다. 판금 조치된 사회과학 서적을 공급하고 광주 지역 청년운동권이 모여 학습할 장소가 필요했는데, 서점이 그 역할에 제격이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이자 중심 역할을 했던 윤상원도 녹두서점을 통해 성장했고 서점 일도 도왔다. 녹두서점은 진보적 재야인사와 문인이 드나드는 사랑방이었으며 5·18항쟁 시기에는 유인물을 만들고 회의를 하는 일종의 상황실로 기능했다. 지금 서점은 사라졌지만, 동구 계림동에 가면 5·18민주화운동 사적지인 녹두서점 자리를 알리는 기념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출판평론가 이시바시 다케후미는 2017년 광주를 방문해 녹두서점 대표였던 김상윤을 만났다. 짧은 인터뷰에서 김상윤은 “과거에 내가 했던 방식의 서점은 더 이상 한국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바시는 “아마도 암담한 군사정권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는 의미가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실제로 민주화가 이뤄지며 대개의 사회과학 서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서울대 앞의 ‘그날이 오면’ 정도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보며 깨달았다. 모습은 달라질지언정 책방은 여전히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