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동 칼럼] 대통령의 이웃 주민들

입력 2024-12-17 00:50

삼성동, 서초동 이웃주민들 대통령 배출 자부심 사라져
20년 동안 3명의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대통령 흑역사
존경받는 이웃 사촌 대통령 우리에겐 정말 요원한 건가

11년 전 기억이 생생하다.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서울 삼성동 사저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23년간 살아온 이곳을 떠나 청와대로 향할 때 이웃 주민의 뜨거운 배웅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좋은 대통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밝은 얼굴로 다시 뵙겠다”고 했고, 주민들은 “5년 후에 멋있게 큰 박수 받고 돌아오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진돗개 두 마리를 선물했고, 박 대통령은 ‘희망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소나무를 사저와 인접한 초등학교에 기증했다. 나 또한 그랬다. 집과는 대략 200m 떨어져 이웃인 박 대통령이 역사에 남을 ‘이웃사촌 대통령’이 돼서 사저로 돌아오길 바랬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 어느 순간부터 저택 부근은 삼엄했다. 6m가량의 높다란 붉은 담벼락, 경광등에다 위에는 철조망까지 쳐졌다. 곳곳에 설치된 보안카메라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통로 초입에는 검은 제복의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할 정도였다. 평소 왕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곳이라 인근 주민들에겐 이런 분위기가 달갑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돼 1476일 만에 사저로 돌아온 박 대통령에 대한 이웃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4년 전 대통령을 이웃으로 뒀다는 자부심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웃이라는 것이 창피해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 “당당하지 못한 대통령의 모습이 부끄럽다” “안 돌아왔으면 좋겠다. 다른 데로 갔으면 좋겠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이웃에 대한 미안함에 결국 박 대통령은 내곡동을 거쳐 대구 달성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7년이 지난 지금,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이런 불행이 서초동에서 재현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서초동 이웃 주민들은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진영을 가리지 말고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고 열렬히 환영했다. 곳곳에 ‘자랑스러운 주민, 윤석열’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붙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주민들에게 “그동안 여러분이 저희 이웃이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여러분들을 오래오래 잊지 않겠다”며 5년 후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도 탄핵 심판 절차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수사도 윤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저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반응은 착잡하다 못해 싸늘하다. 우리의 자랑이라던 2년 전의 자부심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삼성동 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를 시작으로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까지 3명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가 이뤄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년. 이 중 1명이 파면되고 1명이 탄핵 심판을 앞둔 대한민국의 불행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외에 전직 대통령의 흑역사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대통령제를 채택한 여러 국가를 살펴봐도 이례적인 상황이다.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에서 탄핵 소추를 당한 대통령은 3명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하면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사는 정상적이지 않다.

올 초 미국 여행길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버지니아 북쪽에 자리한 워싱턴 생가 마운트버논(Mount Vernon)과 남쪽에 위치한 제퍼슨의 몬티셀로(Monticello)에는 평일인데도 관광객들로 북적여 무척 인상 깊었다. 퇴임 후 사망하기 전까지 생가에서 살았던 두 대통령은 탁월한 지도력과 청렴성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대통령을 이웃사촌으로 둔 주민들의 긍지는 대단했다. 생가에서 만난 이웃 주민은 “대통령이 우리의 자랑이며 든든한 힘”이라고까지 했다.

전직 대통령의 얼룩진 잔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삼성동 옛 사저 앞을 오늘도 지난다. 높디높은 붉은 담벼락을 올려다보면서. 그리고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이웃 대통령, 정말 요원한 것인가.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