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신 데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2017년, 김승환(36) 카이스트 엑소랩 연구원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살아남은 게 신기했던 순간”이라는 그의 말처럼 당시 상태는 심각했다. 손뼈마저 복합외상 골절을 입어 두 다리와 두 손을 모두 쓸 수 없을 위기에 처했다.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김 연구원은 끊임없이 ‘왜 살아남았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재활에 전념했다. 다행스럽게도 손뼈 신경은 손상되지 않아 손 기능을 되찾았다. 그 후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만난 장인은 “결혼식장에 걸어서 들어와라”고 말했다. 이 말이 가슴을 두드렸다. 성경에서 말한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는 기적”이 필요했다.
재활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던 김 연구원은 2016년 열린 제1회 국제 사이배슬론 대회에서 카이스트 팀이 우승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장애인이 로봇을 이용해 각종 임무를 수행하는 대회인데, 이게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욕창으로 출전을 포기해야 했던 2020년 대회의 아픔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끝없는 도전 끝에 올해 10월 열린 제3회 국제 사이배슬론 대회 ‘엑소스켈레톤’ 종목에 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속한 ‘팀 카이스트’는 60점을 기록해 2위와 40점 차이를 내며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각국 참가자가 겨루는 경기에서 김 연구원은 다른 나라 팀과 달리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워크온 슈트’를 착용했다. 개최국인 스위스에서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기립해 박수를 쳤다. 장애가 있거나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워크온 슈트를 혼자 착용하는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는 “보행은 휠체어로도 가능하지만, 워크온 슈트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자존감과 희망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연구를 진행한 박정수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남들이 시도조차 하기 어려워하는 분야를 개척한다는 점이 대단하다. 단순히 기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 연구원은 김 연구원의 어머니가 워크온 슈트를 착용한 아들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로봇 연구가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감동을 주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대전=사진·글 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