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합병(M&A)은 공격자가 반대를 무릅쓰고 대상 회사의 주식을 매집·매수해 지배권을 획득하거나 위임장 대결로 경영권을 취득하는 행위를 말한다. 성공한다면 대상 회사의 이사가 교체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적대적 M&A 국면에서 이사가 적극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은 이사가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사가 회사와 수임 관계에 있고, 경영에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공격자에 대해 상당한 교섭력이 있다는 점 등에 비춰 주식회사의 다른 기관인 주주나 감사에게 경영권 방어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적대적 M&A 과정에서 대상 회사의 이사가 자신의 판단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이유도 다양하다. 모든 적대적 M&A가 사회적 부의 증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사회적 측면에서 이사의 방어행위가 허용된다. 또 공개매수에 대한 이사의 방어행위는 주식의 매수가격을 높이므로 주주의 이익증대라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적대적 M&A 시도가 회사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이사가 적극적으로 방어해야만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된다. 미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적대적 M&A의 다양한 방어 방법이 인정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내에서 적대적 M&A가 시도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자사주 취득이다. 이는 유통 물량을 감소시켜 공격자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주식 취득을 어렵게 한다. 나아가 대상 회사가 취득한 자사주를 우호적인 제3자에게 매각하는 것도 경영권 유지에 보탬이 된다. 이처럼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자사주를 처분해 우호적 주주의 의결권 비중을 높이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유통되는 주식량이 감소해 주가를 상승시킨다. 그 결과 공격자는 예정보다 더 큰 금액이 있어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므로 M&A 의도를 좌절시키는 효과도 있다.
최근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이 자사주 취득을 통해 자신들의 공개매수를 방어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신청을 두 차례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법원은 자사주 취득마저 못하게 한다면 국내 기업들이 적대적 M&A를 수수방관해야 하는 딱한 사정을 고려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처럼 국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경영 방어수단이 자사주 취득밖에 없다는 데에는 생각을 달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소각을 전제로 하지 않은 자사주 취득은 기업의 현금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반칙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사주 취득마저 막는다면 결국 기업들은 약탈적인 행동주의펀드에 무조건 항복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공격자는 선이고 대상 회사는 악이므로 방어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쩐의 전쟁’을 이렇게 부추겨도 되는지 걱정이 앞선다.
권재열(경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