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계엄 사태 이후 정국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지만 정책 공백 현상을 피하기 어려워 정국 불안으로 인한 경제 충격이 우려된다. 이미 충격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내 신인도 하락과 경기 둔화 우려를 반영하면서 환율이 불안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초반대에서 등락하면서 일부에선 1400원대가 뉴노멀, 즉 새로운 기준 환율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율은 경제와 금융시장의 거울과 같다. 원화 가치 약세는 경기 둔화 압력이 커지고 국내에서 자금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거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될 것임을 반영한다. 환율이 1400원대에 진입했던 사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강원중도개발공사 사태, 소위 ‘레고랜드 사태’였다. 경기와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현 1400원대 환율 흐름은 심상치 않은 징후임은 분명하다.
내수 경기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탄핵 정국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2~9일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사업장 신용카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줄었다. 연말 소비가 냉각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심리뿐 아니라 기업 투자심리는 물론 자금난도 우려된다. 수출 경기 둔화와 함께 환율 상승 등으로 외화 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을 지난달 2.2%로 수정 전망했지만 연말 경기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국 불안으로 외국인의 자금이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면서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이탈하는 분위기가 더욱 강화될 여지가 커졌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외국인의 자금이탈이 아닌 국내 개인 및 기관 자금의 탈한국 현상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매입액은 1070억 달러로 지난해 680억 달러에 거의 2배에 이르고 있다. 계엄 사태 이전인 11월 한 달 미국 주식의 국내 거래액은 90조원 수준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마도 계엄 및 탄핵 사태로 정국 불안이 확산된 12월에는 서학개미를 포함한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매입액은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자금의 탈한국 현상에 정국 불안이 기름을 부은 것이다.
금융시장에는 ‘양털깎기’라는 용어가 있다. 국제 투기 자금이 만만한 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해 주가가 상승, 즉 양털이 풍성하게 자라게 한 다음에 일부러 경제위기를 일으켜 알짜배기 기업과 부동산을 마치 양털 깎듯 헐값에 쓸어 담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재 한국 금융시장은 국제 투기자금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양털을 깎으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포브스는 “윤석열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지적했고, 영국 가디언은 현재 레임덕인 아닌 데드덕(레임덕보다 더 심각한 권력공백) 사태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투기자금이 정말 한국 ‘양털깎기’에 참여할 위험이 커진다. 노무라증권이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급등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정치적 불안이 이미 현실화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경제불안이 확산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한국 경제가 스스로 양털깎기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나 금융당국이 경기 방어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부양정책을 선제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