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로 곳곳에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는 10대에서 30대까지 이른바 청년세대가 대거 참여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의 상징이었던 ‘촛불’은 아이돌 응원봉과 이색 깃발 등으로 진화했다. 전문가들은 계엄령 발동이 청년들의 정치적 각성 계기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진 지난 7일과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참여한 청년들은 교과서나 영화에서만 보던 계엄이 현실화한 데 두려움을 느껴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자유로운 일상을 권력의 통제로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집회 현장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김보영(16)양은 “책에서만 보던 계엄이 선포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무서웠다”며 “계엄이 성공했다면 군인들이 사회를 장악했을 거란 생각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직접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수정(23)씨는 “계엄 선포 이후 자유가 빼앗기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도 이어갔다. 인천에서 온 김모(14)양은 ‘대통령 믿을 바엔 감튀(감자튀김)교 믿는다. 전국 감튀교 연합회, 시험 끝난 중학생 연합’이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봉을 들고 집회에 나왔다. 그는 “그동안 경제 상황을 비롯해 한국 사회가 혼란하다는 뉴스를 자주 봤다”며 “중학생인 우리가 보기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기말고사 끝나자마자 나왔다”고 했다. 대학생 임세령(23)씨는 “그동안 거대 양당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면서 부작용이 많았는데, 이번 탄핵으로 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는 축제의 장으로 연출됐다. 청년층은 K팝에 맞춰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면서 춤을 추는 등 집회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SNS를 통해 함께 놀 친구를 구하기도 했다. 김양은 “당근마켓에서 사람을 모았고, 또래 세 명이 함께 집회에 왔다”며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시험은 망쳤지만 나라는 망칠 수 없다’는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나온 이모(17)양 역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왔다”며 “우리에겐 시험보다 나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상화된 가치를 한순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청년층에게 작용한 것으로 봤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자유와 권리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이런 가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저항감을 느꼈던 것”이라며 “탄핵 집회 현장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연대가 형성됐다. 청년들도 이러한 연대가 힘이 세다는 걸 깨닫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10대들은 과거와 다르게 기후위기나 국민연금 등의 현안에 관심이 상당히 많다. (이런 문제를) 정치권이 잘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정치적 관심이 매우 높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이슈 민감도가 높아진 청년들이 이번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시민들은 서울 곳곳에서 윤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갔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 7000여명은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종로구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했다.
윤예솔 최원준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