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찾은 호주 남부의 쿠퍼 분지에서는 푸른 하늘과 누런 대지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곳은 남한 국토(약 10만㎢)보다 넓은 약 13만㎢에 걸쳐 사막 지대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끝없는 지평선 사이에서 수십m 높이의 배관과 금속제 설비가 빽빽하게 들어선 대형 시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호주 남부를 대표하는 뭄바(Moomba) 가스전이었다.
가스전은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근무지 내를 이동해야 할 정도로 광활했다. 내부는 사막의 열기와 주변 설비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소란스러운 환경에서도 가스전 한쪽의 울창한 배관 시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스 생산 과정에서 분리한 이산화탄소를 실어 나르는 배관이었다. 지름이 약 1.2m인 배관은 연거푸 압축 시설을 통과하면서 지름이 25㎝까지 줄어들었다. 안내하던 직원은 “공기 자체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배관의 굵기를 통해 이곳에서 탄소를 포집해서 압축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지난 10월부터 호주 서부의 배로우 섬(고르곤 프로젝트)에 이어 호주서 두 번째로 탄소 포집 및 저장(CCS) 시설이 상업 가동되고 있다. CCS란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를 잡아내 땅이나 바닷속에 저장하는 기술을 뜻한다. 기존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기틀을 유지하면서도 탄소 저감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으로 주목받는 기술이다.
남호주의 건조한 내륙 지역에 있는 뭄바 가스전은 호주를 대표하는 에너지 기업인 산토스(Santos)의 에너지 생산 기지로 1960년대부터 활약해왔다. 인근의 약 160개 가스전에서 추출한 가스는 이곳에서 처리 과정을 거쳐 총 3000㎞ 규모의 배관 설비를 통해 시드니, 애들레이드 등 호주 동·남부의 주요 도시로 공급된다. 75개 안팎의 유전에서 추출한 기름도 애들레이드에서 정제를 거쳐 시장으로 나간다.
가스전은 최전방 기지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반 거주 지역에서 최소 60㎞ 이상 떨어진 남부 한복판의 오지이기 때문이다. 산토스 직원 1000여명은 호주 전역에서 2주마다 한 번씩 출퇴근 전용 비행기를 타고 이곳 캠프로 모인다. 2주간의 근무가 끝나면 교대조와 역할을 바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한때 화석연료 생산의 전진기지였던 이곳은 이제 탄소중립 실현의 전진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현재 뭄바 CCS 시설이 저장하는 탄소는 바로 추출한 가스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다. 이곳의 가스는 전처리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 약 20~23%의 이산화탄소를 함유하고 있다. 과거의 뭄바 가스전은 이를 그대로 분리해 공기 중에 날려 보냈다.
포집 설비가 갖춰진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수십m 높이의 분리 시설 7기에서 포타슘이라는 촉매를 활용해 탄소를 분리하고, 분리한 탄소는 약 125bar의 압력으로 4단계에 걸쳐 압축된다. 탄소는 본래의 4분의 1 수준으로 부피가 줄면서 고밀도상(dense phase)라 불리는 상태로 변한다. 이를 통해 적은 부피로 배관 안에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산토스 측의 설명이다. 주입 후 부식이나 유독물질 생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분까지 99.5%를 제거한다.
이렇게 압축과 탈수를 마친 탄소는 가스전 한쪽의 주입기를 통해 약 52㎞ 거리에 위치한 5개의 주입정으로 향한다. 탄소를 땅속에 저장하는 뭄바 CCS의 경우 이곳에 즐비한 고갈 가스전을 저장 장소로 활용한다. 한때 천연가스를 가두고 있던 고갈 가스전의 구조가 탄소를 저장할 때도 훌륭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한번 저장된 탄소는 반영구적으로 그 장소에 머무른다. 뭄바에서는 10개의 관측정을 통해 저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안내하던 직원은 “가스전 측의 주입 압력과 주입정 측의 압력을 대조해서 이상이 없다면 탄소가 안정적으로 저장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저장 상태를 모니터링한 자료는 호주 연방 정부와 주 정부에 주기적으로 보고된다.
리처드 힝클리 산토스 CCS 담당 이사는 “뭄바 기지는 CCS가 ‘진짜 기술’이고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뭄바 기지가 CCS의 실효성이나 실제 작동 여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일각의 의문을 잠재우는 ‘모범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취지다.
힝클리 이사는 그중에서도 특히 뭄바 기지의 경제성을 강조했다. 뭄바 CCS의 탄소 저장 비용은 1t당 약 24달러(약 3만4000원)로 전 세계 CCS 프로젝트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기존 뭄바 가스전의 인프라와 안정적인 지형 구조를 바탕으로 손쉽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저장 용량도 강점으로 꼽힌다. 산토스에 따르면 뭄바 CCS의 총 저장용량은 약 5억4000만t에 이른다. 한국의 지난해 전체 탄소 배출량(6억2420만t)에 준하는 수준이다. 상업 가동 초창기인 현재는 아직 기지의 역량을 100%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뭄바 CCS는 지난 10월부터 올해 연말까지 탄소 25만t을 저장하고, 이후 매년 170만t의 탄소를 저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산토스 측은 앞으로 한국·일본 등 호주 안팎에서 추가로 탄소 저장 계약을 체결하고 설비 확충을 마치면 2030년에는 연간 2000만t 수준으로 저장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뭄바 CCS를 단순 저장 기지를 넘어 ‘친환경 에너지 생산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이 산토스 측의 구상이다. 이들은 뭄바 인근의 풍력·태양광 등 풍부한 재생에너지 여건을 활용해 그린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포집한 탄소와 결합해 탄소중립 연료로 만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때 화석연료의 생산기지였던 이곳을 완전한 ‘재생에너지 전진기지’로 변신시키겠다는 것이다. 힝클리 이사는 “우리는 뭄바 CCS가 일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뭄바=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