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주의 복원력 보여준 대한민국, K시위도 돋보여

입력 2024-12-16 01:10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윤웅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한 건의 사고도 없이 마무리됐다. 놀라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계엄 선포 11일 만에 민주적 절차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면서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세계에 과시했는데, 그 중심에는 K시위가 있었다. 아이돌 응원봉으로 대표되는 K시위는 외신의 찬사가 이어질 정도로 평화롭고 발랄하며 창의적이었다.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00만명, 경찰 추산 20만8000명이 몰렸지만 폭력 사태 등의 불상사는 없었다. 느닷없는 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표결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광화문에서 탄핵 반대를 외쳤던 이들은 가결 결과가 나온 후 상황을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해산했다. 여의도에서 탄핵 촉구를 외친 이들 역시 크게 들뜨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시위 현장을 벗어나 한 단계 성숙한 시위 문화를 보여줬다.

이번 시위는 특히 K팝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로이터 통신은 ‘K팝 야광 응원봉이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추운 날씨에도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함께 K팝을 부르며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흥겹게 흔들었다. 이는 시위는 무섭고 위험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집회 진입 장벽을 낮췄다. K팝의 흥겨운 정취가 분위기를 밝게 했지만 시위 참가자들이 현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빛나는 소중한 응원봉을 갖고 나온 젊은 세대들은 진지했다. 이들의 적극적인 집회 참여와 헌신은 한국 민주주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은 선결제 방식으로 커피와 밥 등을 제공하며 힘을 보탰다. 해학의 민족답게 ‘내란성 위염’ 같은 재기 발랄한 신조어가 SNS에서 인기를 끌었고,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같은 시위 현장에 나온 독특한 문구의 깃발도 주목을 받았다. K시위에 감동받은 외국인들이 시위 현장에 투어로 참여하고 싶다고 할 정도란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후진국으로 추락할 뻔했던 대한민국의 위상을 바로잡았다. 시민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