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오션 브엉은 인터뷰에서 창작자들을 위한 짧은 조언을 해 달라는 요청에 “집 가는 길을 최대한 멀리 돌아가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귀갓길은 사회 구성원이 됐다가 다시 한 명의 개인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시간이다. 이도 저도 아닌 이 진공의 시간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던 것 같다.
이동만이 목적인 상태일 때 얻게 되는 안심과 자유 때문에 여행 중 기차나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서울 중심부에 살다가 최근 경기도 외곽으로 잠시 거처를 옮기면서 귀가시간이 길어졌다. 피곤한 귀갓길에서는 상념에 잠기기 좋았다.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요즘, 어쩔 수 없이 지하철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은 그 흐름을 잠시 멈추고 세계와 일상에 대해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요즘 나는 그 시간 동안 스스로를 향해 몇 개씩 질문을 던진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삶의 형식은 어떤 것인지, 세계가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소하게는 어째서 오늘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돌아보고 고민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 있다.
한강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깊게 품었다는 질문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를 떠올려 본다. 지금은 질문의 형태인 이 두 문장이 미래에는 ‘과거는 현재를 돕는다’ ‘죽은 자는 산 자를 구한다’는 명료한 진술로 변형돼 사람들 입을 통해 전해질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통해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들은 시대를 가로질러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가슴속에 남아 미래를 돕는 또 하나의 과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삶에 대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삶에는 결론이 없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써 우리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름답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