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 돌봄 제도 갖추지 않은 법 개정은 무의미

입력 2024-12-17 00:10

지난 10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연명의료 결정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법 개정의 개요는 ‘임종 과정’을 삭제하고 말기 진단에서부터 연명의료 중단이 실행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존 법안에서는 개인이 연명의료를 거부해도 임종 과정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 결정이 작동되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말기 환자들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말기 환자로 진단되면 호스피스를 이용할 자격이 생기지만 호스피스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연명의료의 대상이다. 문제는 호스피스를 받고 싶어도 암을 비롯한 일부 질환만 대상이고 대부분의 병원이 호스피스를 기피한다는 점이다. 이용 기회는 하늘의 별 따기다. 결국 말기 환자여도 적극적인 치료를 받다가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연명의료 중단이 논의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법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의학적 말기 상태임에도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더 큰 병원을 찾으며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말기라 함은 치료 효과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효과 없는 치료마저도 불가능하게 몸이 망가진 상태로 이해된다. 의식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돼서야 호스피스로 의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60대 초반의 남자 환자가 있었다. 그는 지난 6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고 그다음 날 친구들과 모임에서 건배를 하며 자신이 4기 환자임을 밝혔다. 수술과 항암 치료에 대한 주변의 권유를 모두 뿌리치고 그날부터 아내, 외동딸과 함께 여행·캠핑을 다녔다. 하루하루 몸이 수척해져도 힘을 내서 삶의 일기장에 추억을 빼곡히 채웠고 누구보다 멋진 3개월을 살고 9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여느 말기 환자와 달리 임종 3일 전까지 식사를 했고 맑은 정신으로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거듭 말하지만, 법에서 임종 과정이 삭제되고 연명의료의 이행이 말기 환자부터 가능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준비되지 않으면 법 개정은 아무 효력이 없다. 사회 역시 말기 진단 후 환자가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돌봄 제도를 갖추지 않으면 법 개정은 그저 국민 눈을 가리는 요식 행위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