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7년 만에 되살아난 계엄

입력 2024-12-16 00:35

군이 계엄안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검토한 문건이 공개된 건 6년 전이었다. 국방부는 2018년 7월 기밀 해제 절차를 거쳐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에서 작성한 ‘대비계획 세부자료’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진행된 군의 계엄 의혹 규명 차원이었다. 기무사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2017년 3월 이 문건을 작성했다. 군사 2급 비밀이던 문건에는 ‘계엄사령관 추천 건의’ ‘비상계엄 선포문’ ‘포고문’ ‘합동수사본부장 추천 건의’ 등 계엄 발동 및 유지에 필요한 문서 양식까지 첨부됐다.

문건에서 제시한 비상계엄 선포문은 이렇다. ‘정부는 탄핵 결정 이후 집회·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시위대의 무장 및 폭동, 강력범죄 확산 등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됨에 따라 (중략) 국가의 위기를 종식시켜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면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종북 척결을 빼면 문건 내용과 12·3 비상계엄의 실제 상황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한다는 것뿐 아니다. ‘국회에 의한 계엄 해제 시도 시 조치사항’이 실제로 시도됐다. 조치사항으로는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항목에 ‘계엄사령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등 엄중처리 관련 경고문 발표’ ‘합수단,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검거 후 사법처리’ 등이 나열됐다. 국회의 계엄 해제 안건 직권상정 원천 차단 방안으로는 ‘여당을 통해서 계엄의 필요성 (설득) 및 최단 기간 내 해제 등 약속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유도한다’는 내용도 있다.

계엄사령부가 이번 포고령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조항을 넣은 것은 이와 유사한 국회 무력화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또 계엄 선포 당시 당사와 국회로 우왕좌왕했던 국민의힘 의원들 움직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계엄 해제 시도 시 조치 중 하나였다고 가정하면 이상할 게 없다.

앞으로는 불법 계엄 시도를 막을 수 있을까. 지난 9월 발의된 계엄법 개정안에는 ‘현행범인 국회의원을 체포, 구금하고 있는 행정기관은 국회가 계엄 등과 관련된 논의 등을 위해 회의를 소집할 경우 즉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에 대해 72시간 내 국회 재적의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계엄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공교롭게 내란 공모 등 혐의로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재임 중이던 국방부가 이들 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방부의 반대 의견과는 별개로 법 개정을 통해 반헌법적 계엄을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 계엄 선포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거나 군 통수권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지만 대통령의 결단만 있으면 이러한 제동 장치가 속절없이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대치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을 없앨 수도 없다. 7년 전 탄핵 국면에서뿐 아니라 정치 위기 때마다 떠올랐던 개헌 논의가 이번에는 진지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국회가 국정 운영 권한을 나눠 갖도록 하는 등의 권력구조 개편안을 포함한 개헌이 비정상적 대통령의 출현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다.

김경택 사회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