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족(廢族)이란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나 그런 상황에 처한 족속(가문)을 가리키는 단어다. 연좌제가 폐지된 오늘날 일상에서는 쓸 일이 없지만 정치인들이 가끔 입에 올리곤 했다.
이 단어가 많은 이들에게 각인된 시기는 2007년 대통령선거 직후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말에 치러진 대선에서 여당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대패를 당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주축을 이루던 친노 세력의 지지 기반이 붕괴된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은 그해 12월 26일 이런 글을 썼다. “친노라고 표현돼 온 우리는 폐족이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다. 우리는 실컷 울 여유가 없다.” 불과 2년여 후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에 당선되며 다시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다음은 한나라당의 후예 국민의힘 차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2017년 대선과 이후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모두 참패했지만 당이 여전히 지리멸렬하던 2020년 12월이었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과오와 당의 반성·자숙이 부족했다는 대국민사과를 했다. 당 일각에서는 미래를 위해 ‘폐족 선언’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말도 안 된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후 국힘은 ‘강골 검사’ 이미지로 이름을 알린 윤석열 후보를 내세워 202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폐족 얘기는 쑥 들어갔다.
그런데 이 단어가 윤 대통령 탄핵 후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검찰이었다. 검찰총장 출신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수사와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자 조직 내에서 “검찰은 이제 폐족”이란 자조가 흘러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윤 대통령의 탓으로만 돌려선 안 된다. 그동안 검찰이 보여준 행태에 대해 야당은 물론 많은 국민들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사 전성시대’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때 검찰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