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기도 포천의 기독교 사회복지시설 ‘노인천국’을 둘러보며 이 기관을 설립한 박남주(80) 이사장과 2시간가량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대부분 시설에 가족을 모신 보호자의 연락이었다. ‘어머님이 잘 계시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까지 이사장이 직접 챙기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한 일”이라며 웃었다. 민원인 문의에 따라 담당 직원 전화번호를 곧장 기억해 내 안내하는 모습은 신기할 정도였다. 박 이사장은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라’라는 말씀에 따라 목회를 내려놓고 노약자를 섬기는 종이 되겠다는 처음 그 마음을 마지막까지 잃지 않고 싶다”고 강조했다.
‘배산임수’ 요양원은 신앙 공동체
노인천국은 최근 국민일보 선정 ‘2024 기독교브랜드 대상’ 사회공헌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노인천국엔 요양원 7동과 1동의 실버타운 시설이 있다. 2003년 29명이 입소할 수 있는 요양원 건물 하나로 시작해 20여년 만에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200여명 직원이 400명의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박 이사장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감격했다.
박 이사장은 직원에게 세 가지 강령을 강조한다. 어르신을 ‘잘 먹게 하자’ ‘잘 걷게 하자’ ‘잘 놀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잘 드시기만 해도 혈색이 좋아지고 건강해지시는 걸 알기에 잘 못 드시는 어르신에게는 하루 6번, 9번을 나눠서라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직원에게 늘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1인실을 고집하는 것도 노인천국의 특징이다. 지난해 4월 완공된 ‘믿음의 집’은 전체가 1인실로 이뤄져 있다. 나머지 시설도 70%가량이 1인실에 해당한다. 박 이사장은 “각자의 생활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함께 지내게 되면 신경이 곤두서고, 결국 사는 곳이 지옥이 될 수 있다”며 “TV, 화장실, 냉난방시설을 개인이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어르신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시설 바로 앞엔 광덕산에서 시작해 한탄강에 합류하는 하천인 영평천이 흐른다. 뒤편엔 잣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날씨가 화창할 땐 가족이 찾아 함께 소풍을 즐길 수 있는 자연환경이 조성돼 있다.
‘약자 돌보겠다’ 목사의 또 다른 서원
박 이사장은 목사다. 1983년 경기도 구리에 개척한 교회에서 20여년간 안정적으로 목회했다. ‘영국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 ‘빈자의 성녀’인 테레사 수녀처럼 약자를 섬기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후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노인천국에는 예배당이 있다. 박 이사장이 설립 10여년 차 즈음 지은 소망교회로, 성도 대부분이 입소 어르신이다. 은발의 성도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한다는 뜻의 ‘은하수 찬양단’도 단원 3분의 1이 어르신이다. 코로나19 이전엔 150여명이 모였고, 지금도 120명이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성도 헌금 전액을 미자립교회와 해외교회 설립, 선교사에 후원한다. 박 이사장은 “꼬깃꼬깃한 지폐가 많지만 천국 소망을 품고 좋은 일에 써달라며 거금을 쾌척하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며 “캄보디아에 현지인 교회를 이미 세웠고, 혼자 된 70~80대 할머니들을 모실 무료 양로원을 겸비한 선교센터를 수도 프놈펜에 지으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성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헌금으로 지역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한다.
박 이사장은 소망교회 예배가 없는 평일과 토요일엔 오전 6시와 6시40분 시설을 옮겨 다니며 설교를 전한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저의 건강 비결이기도 하다”며 “어르신들이 입소 동안 몸뿐 아니라 영적 건강도 지키시길 기도한다”고 했다. 그는 설교 마지막엔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주의 피로 죄 사함 받았습니다’ ‘나는 천국 갈 것을 확신합니다’는 3가지 신앙고백을 어르신들에게 외치도록 독려한다.
노인 행복 위해… ‘사랑·사명감으로’
노인천국 각 요양원의 원장은 모두 목회자다. 박 이사장은 “사랑과 사명감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어르신들이 입소 동안 즐겁게 지냈으면 한다고 했다. 1년에 2차례 위문 공연을 펼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 1일엔 교회와 함께 임직식을 겸한 잔치를 열어 명예 장로, 권사, 집사 등 임직자를 세웠다. 최근엔 어르신 100여명이 성경 암송, 필사, 통독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제가 오히려 감동한다”며 “이곳에 와서 신앙을 처음 갖는 어르신도 계시는 등 올해에만 12명이 세례를 받았다”며 전했다.
노인천국엔 직원 부모는 물론 은퇴한 목회자도 여럿 지내고 있다. 박 이사장은 특히 어려운 처지의 은퇴 교역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은퇴한 한 목사님께서 ‘이곳이 지내보니 천국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눈물이 났다”며 “믿음, 소망, 사랑, 은혜, 평강 등 신앙적 다짐이 담긴 각 요양원의 이름처럼 어르신들이 웃고 기뻐하며 편안히 지낼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포천=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