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11일 훗날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사이러스 밴스 전 국방부 부장관이 린던 존슨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밴스 특사는 박정희 대통령 등 여러 한국 정부 고위 인사를 만났다. 그의 방한 목적은 박정희정부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북한 특수부대가 박 대통령 시해를 시도했던 1·21 사태 이후 한국 정부는 격앙돼 있었다. 바로 이틀 후 북한이 미 해군 정보수집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자 미국이 즉각 군사 대응했는데, 미온적이었던 1·21 사태 대응과 대비돼 한국 정부의 분노를 샀다.
미국은 긴장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한국이 북한의 도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미국의 안보 공약조차 의심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찰스 본스틸 주한미군사령관도 한국의 분위기가 감정주의에 휩싸여 있고, 특히 박 대통령이 대북 보복 공격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며 우려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대북 보복 공격을 하려고 여론을 부추긴다고 봤다. 보복이 자칫 한반도에서 다시 대규모 분쟁을 촉발하면 미국은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다. 그런 시점에 또 다른 아시아 전쟁에 연루되기는 싫었다. 국무부 건의로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특사를 급파한 이유였다.
밴스 특사는 한국 정부에 미국의 안보 공약을 재확인했고, 한국군의 반란 및 침투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도 약속했다. 임무를 마친 후 밴스 특사는 존슨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국을 안심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박 대통령에 관한 기술이다. “나라 전체가 그의 통제 아래 있고, 누구도 그에게 싫어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 감성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음주가 과도하다. 그는 위험하다.” 박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자의 불안정한 성격 때문에 한반도 정세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이전까지 미국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박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는데, 평가가 극적으로 반전된 것이다.
밴스 특사가 박 대통령의 성품과 사생관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했는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미국은 이런 인식을 배경으로 한국에 대한 개입 축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닉슨은 1971년 말까지 주한미군 병력의 절반을 철수시켰다. 미국의 재정적자 악화, 베트남전 여파로 대외 개입에 대한 의회와 여론의 부정적 인식 확산, 한국의 경제 성장 등도 주한미군 철수 정책의 배경이었지만 정책 변화를 촉발한 것은 바로 한국의 지도자 리스크였다.
지난 3일 밤 느닷없는 계엄령 선포 이후 최근 정치적 격변이 우리 외교안보의 중심축인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크다.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계엄령 선포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부정적 인식을 표현했다. 물론 이들은 곧 물러날 조 바이든 행정부의 관리지만 새로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라고 전혀 다르게 인식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갖게 된 문제의 핵심은 한국이 과연 안정적인 동맹 파트너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몰고 온 리스크에 우리 정치의 리스크가 추가됐다. 1968년 미국의 한국 지도자 관련 리스크 인식이 닉슨 행정부의 주한미군 부분 철수로 귀결됐듯 동맹을 거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개입을 축소하려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에 한국의 리더십 불안정성이 더해지면 한·미동맹에 치명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조속히 정국을 안정시키고, 정부 리더십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근본적 정치 개혁을 추진해야 할 외교안보 차원의 이유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