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 때까지 모든 직무와 권한이 정지됐다. “지난 2년 반 오로지 국민만 바라봤다”는 윤 대통령은 이날 탄핵소추 자체로 사실상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었다”는 비상계엄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는지의 여부를 헌재로부터 낱낱이 심판받게 된다. 헌재가 윤 대통령의 국민 신임 배반을 판단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된다.
헌법주의자를 자임하던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돌자마자 비상계엄 선포 행위의 반헌법성을 판단받을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됐다. 취임 이후 한결같이 자유와 법치의 가치를 내세웠으나 이와 완전한 대척점에 선 비상계엄을 선택, 한순간에 자기 손으로 탄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개인의 법적 권리를 말한 데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자체가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 손실이라고 과거 헌재는 개탄했었다.
현대사의 비극 격인 대통령 탄핵소추를 낳은 원인은 윤 대통령과 야당의 뿌리깊은 불화, 그리고 이를 해결할 정치력의 부재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나 범죄자 집단으로 인식하며 올 들어 국회 개원식이나 시정연설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겠다는 지난 12일 담화에서도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야당과 크게 대립하기 시작한 분기점은 그가 검찰총장이던 2019년 하반기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가 꼽힌다. 문재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잇따라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 수사 이후 인사권이 배제되고 징계를 청구받았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저항해 검찰총장직을 내던졌다. 이 무렵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전까지는 검찰에 박수를 쳐 왔는데, 근자의 일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면야 내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해에 바로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인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정치적 기반이 전무했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자신을 신임한 정권에도 칼을 겨눌 수 있는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연이어 거부하며 자신이 말하는 공정과 법치에 금이 가게 했다. ‘가짜뉴스’ ‘반국가세력’을 빈번하게 언급하는 등 정치적으로 극단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치적 극단화, 여론보다 신념을 중시하는 태도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 저하로 이어졌다. 취임 직후 50%를 웃돌았던 지지율은 취임 80일 만에 20%대로 떨어졌고, 윤 대통령은 전 정권의 실정을 탓하기 시작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이후에는 “박절하지 못했다”는 말로 더욱 큰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이후에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나 민의를 받들겠다는 모습이 실질적으로 감지되진 못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이렇게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이 있었느냐”는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이성적 흥분 상태’에서 행한 것으로 보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이대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체포를 지시하고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방송사를 접수하려 했다는 의혹, 음모론 수준인 부정선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정황 등은 이미 그에게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진지한 반성과 설득보다는 강성 지지층의 결집만을 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재의 아픔이 남은 국민들에게 비상계엄을 꺼내든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집권여당 대표를 지낸 한 정치권 인사는 “야당은 원래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원로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