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의 장본인인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며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수호하기 위해 국민들께 망국적 상황을 호소하는 불가피한 비상조치를 했다”며 계엄 조치를 거듭 정당화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를 지키기 위해 군을 동원,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했다는 모순적 주장은 오히려 국민적 분노를 키우는 양상이다. 자신사퇴의 길을 끊고, 탄핵 심판대에 오르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사전 녹화한 29분간의 담화를 통해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지키려 했던 것”이라며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강변했다. 5일 만에 방송 화면으로 모습을 드러낸 윤 대통령은 여전히 야당을 ‘국헌 문란을 주도한 세력’ ‘범죄자 집단’이라 칭했고, 내란죄 수사와 탄핵 시도를 ‘광란의 칼춤’이라 평가절하했다. 윤 대통령은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조치를 나라를 망치려는 내란 행위로 보는 것은 우리 헌법과 법체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린다”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 등으로 본인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면서도 ‘과거 계엄과 달리 계엄의 형식을 빌린 비상조치’라고 스스로 의미를 축소했다. ‘국헌 문란’ 목적의 국회 무력화가 없었다는 항변인데, 이는 다른 연루자들의 증언과 상충돼 향후 수사를 통한 실체적 진실 확인이 불가피하다. 대표적으로 윤 대통령은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다”며 “그래서 계엄 해제 안건 심의도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접수를 지시받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날 담화에서는 비상계엄 당시 선관위에 계엄군이 투입된 배경에 ‘선거 결과 불신’이 있었다는 점도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차마 밝히지 못했던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다”며 국가정보원을 통해 파악한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이 ‘엉터리’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데이터 조작·해킹을 통한 부정선거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이미 결론내린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담화를 마친 뒤 법률안 21건, 시행령안 21건을 재가했다. 여당의 조기 퇴진 요구를 대통령 권한 행사로 응답한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의 담화 직전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고, 담화 직후 “사실상 내란 자백”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을 향해 “국민의힘도 탄핵에 찬성할 것”이라며 “이제 다 내려놓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