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비상 상황”“野 경고성”… 법적 책임 회피 위한 항변

입력 2024-12-13 00:13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 의원들이 12일 국회 의안과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야권은 탄핵안을 13일 본회의에 보고하고 14일 오후 5시 표결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발표한 담화문에는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사실상 전면 부인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 수사 및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대비해 방어 논리를 구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읽힌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비상계엄을 선포할 만한 위기 상황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행위에 위헌 소지가 없다고 항변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야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에 대한 ‘경고’ 차원이었음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향후 수사 과정에서도 이날 담화를 기반으로 무혐의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대통령 주장은 최근 군과 경찰 지휘관들의 진술과도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 법적 책임은 결국 수사와 재판으로 가려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배경을 크게 네 가지로 설명했다. 야당의 탄핵소추 남발로 인한 국정 마비, 간첩법 개정 무산 등에 따른 안보 위협, 원전 관련 예산 등 핵심 정책 예산 삭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 시스템 관리에 따른 보안 점검 등이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망국적 비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에서 정한 요건에 들어맞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헌법 77조는 전시·사변이나 그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비상계엄 선포 요건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주관적 상황 인식이 어떠한 법적 판단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시행을 위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했다. 이 역시 헌법에서 규정한 대통령 권한이고, 요건도 ‘내우외환, 천재지변 등의 중대한 위기’로 유사하다. 하지만 헌재는 객관적으로 위기 상황일 때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 같은 기준에 비춰보면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객관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따른다. 윤 대통령이 ‘비상’이라고 판단한 사례는 여소야대 정치 지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고 모든 국민이 두려움을 느낄 만한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과거 계엄과는 달랐다”고 했지만, 계엄 정국이 유지됐던 군사정권 때보다 객관적인 위기 요인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기 여부에 대한 일차적 판단은 대통령에게 있겠지만 재량권을 자유롭게 주는 것은 아니다”며 “객관적으로 위기라고 인식할 만한 상황이 전제돼야 하고 주관적 확신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승대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가 원하는 대로는 안 될지 몰라도 헌법질서 틀 내에서 국정이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목적을 “야당을 향한 경고와 국민에 대한 호소”라고 한 것은 형사처벌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내란죄가 성립되려면 헌법에 따라 설립된 기관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점이 인정돼야 한다. 즉 국헌문란 목적이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향후 야당 행태를 국민에게 알리고자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므로 자신의 행위가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은 실제 무장하지 않은 소수 병력만 동원한 점, 국회의사당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는 없었던 점, 방송 송출을 막지 않았던 점 등을 이유로 국회 무력화 목적은 없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 투입된 계엄군을 보면 국회 무력화 목적이 있다고 볼 여지가 적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시 투입된 특전사령부 산하 707특임단은 암살 등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병력이고, 1공수여단도 최정예 부대로 꼽힌다. 일부 병력은 야간투시경 등의 장비를 갖췄다. 실탄이 개별 지급되진 않았지만 차량에 보관돼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밖에 집회나 언론 활동 등을 금지한 포고령은 윤 대통령이 밝힌 목적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고를 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폭탄을 터뜨리고 부수는 것만이 폭동이 아니다”며 “정예 특전사 병력을 국회에 배치한 이유는 설명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내란 범행을 자백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통치행위’라는 윤 대통령 주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 논리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12·12 사건 등으로 재판받던 신군부 측은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삼권분립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사법부는 계엄 선포의 위법성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비상계엄 선포는 법원 심사 대상”이라는 판단을 내놨다.

당시 대법원은 어떤 행위가 국헌문란에 해당하는지에 관해서도 기준을 제시했다. 국회를 영구적으로 폐쇄하는 것뿐 아니라 일정 기간 기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다면 국헌 문란에 해당한다고 봤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주요 정치인 체포 지시를 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또 국회 출입을 막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군과 경찰 지휘관 진술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실제 투입된 이들은 국회를 무력화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가”라며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