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를 앞둔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을 중심으로 진용을 단단하게 갖췄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은 그룹 기획조정담당을 겸직하고, 외국인 최초로 현대차 사장에 내정된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한국을 방문해 직원들과 소통에 나섰다. 정 회장을 정점으로 장 신임 부회장, 무뇨스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트럼프 2.0 시대 글로벌 자동차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12일 무뇨스 사장의 소셜미디어 채널인 링크드인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그는 서울 서초구 현대차 사옥에서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그가 국내에서 타운홀 미팅은 연 것은 처음이다.
무뇨스 COO는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진행된 LA오터쇼에서 “(정 회장이) 한국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최소한 초기에는 한국에서 70%, 미국 등 다른 대륙에서 30%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현대차 CEO로서 국내 사업장 또한 직접 챙기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번 방한을 시작으로 무뇨스 COO의 내부 소통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타운홀 미팅에서 “영어를 못하는 동료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데이터와 퍼포먼스 언어를 통할 수 있다”며 소통 의지를 드러냈다.
‘북미통’인 무뇨스 신임 사장은 향후 현대차 경영에 전념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게 된다. 그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규제에) 준비하고 있으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장 사장의 역할 강화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내년부터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조정실장을 겸직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막중해진다는 의미다. 장 신임 부회장은 내년부터 현대차그룹의 완성차 상품 기획·공급망 관리·제조 품질 관리 등을 총괄할 뿐 아니라, 미래 신사업 육성과 투자 전반을 컨트롤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기민한 시장 대응 등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이끈 장 부회장에게 구심점 역할을 맡긴 것으로 풀이된다. 안정적인 리더십 진용을 갖췄으나 국내 정치 상황이 변수로 튀어나왔다.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직후 우리나라의 국정 공백이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등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새 정부와 협상할 한국 정부의 파트너 부재가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내수에 치중하던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위협적인 대목이다. 현대차·기아가 올해 폭스바겐그룹을 바짝 뒤쫓으며 글로벌 2위를 노릴 수 있었던 것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로 미국 시장에서 선전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의 추격이 당장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리라 본다”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