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대국민 담화 상당 부분을 야당 비난에 할애했다. “광란의 칼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괴물” “망국적 국헌문란 세력” 같은 거친 표현을 써가며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적개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강성 보수층에 기대어 현재의 탄핵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정 책임자로서 12·3 비상계엄 선포로 초래된 혼란상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사과 없이 오히려 정치·사회적 분열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윤 대통령 담화는 시작부터 민주당을 겨눴다. 비상계엄 선포 과정의 위헌성을 내란 혐의로 보는 야당의 공세를 ‘광란의 칼춤’이라고 힐난했고, 야당이야말로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는 세력이라며 탄핵·특검 추진 사례를 열거했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9분간의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야당을 ‘범죄자 집단’ ‘망국적 국헌문란 세력’ ‘반국가 세력’ 등으로 지칭했다. 국정 운영의 파트너가 아닌 ‘적’이라는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는 다짐으로 담화를 마무리했다. ‘야당’과 ‘국민 여러분’을 철저히 분리해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야권의 정권 견제는 당연한 것”이라며 “이를 정치력으로 극복해야 할 대통령이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계엄을 선택해 놓고는 야당 탓만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통화에서 “취임사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대국민 선언이 강경했고, 자극적이고, 민심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며 “이번 담화를 보면서 대통령의 그 생각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점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 때부터 각종 공식석상에서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공산전체주의 세력’ ‘반국가 세력’ 등을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공언해 왔다.
정치권에선 이날 담화가 야당에 대한 극도의 불만을 갖고 있는 극우 지지층을 향한 결집 메시지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몇 퍼센트도 되지 않는 극우 강성 태극기부대를 향한 ‘나를 도와달라’는 몸짓”이라며 “오히려 그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촛불을 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총궐기하라’는 지지층을 향한 공개 선언”이라며 “실제 아주 소수의 강경 보수층은 지금 빠르게 뭉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 담화가 분열에 기댄 ‘갈라치기’ 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다.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김상욱 의원은 “참담하다.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편협한 일부 보수 지지자와 온건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다수 보수 지지자 사이를 갈라치기해 갈등과 분열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정현수 정우진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