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 “선관위 전산시스템의 허점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12일 밝혔다. 선관위 전산시스템이 해킹에 취약하며, 지난 총선 이전 개선을 요구했으나 수정됐는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직접적으로 ‘부정선거’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선거 조작 음모론과 논리 구조가 유사하다. 대통령이 현 민주주의 체계의 핵심인 선거 관리에 대한 사회적 불신 조장에 앞장선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지난해 하반기 선관위를 비롯한 헌법기관과 정부 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공격이 있었다”며 이후 시스템 장비 일부분을 점검했는데 상황이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국정원 보고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말했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며 여당이 참패한 22대 총선 결과에도 의구심을 표했다.
윤 대통령은 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계엄군의 지난 3일 선관위 청사 점거와 전산실 서버 촬영 등이 모두 본인 지시로 이뤄졌음을 인정한 셈이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공동으로 선관위 보안컨설팅을 실시한 뒤 “보안관리가 미흡해 해커가 개표 결과값을 변경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통제 장치 등을 배제한 상태에서 순수하게 기술적인 내용에 한정해 실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부 기술적 취약점이 있더라도 실제로는 다른 통제 장치들이 가동되고 있어서 부정선거가 불가능하다고 일축한 것이다.
선관위는 이날 윤 대통령 담화에 대해 “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제기된 부정선거 주장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며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인한 의혹 제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대법원은 2022년 7월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부정선거나 개표 결과 조작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당시 선거무효 소송을 기각하며 “원고가 제출한 증거는 주로 원고 주장을 보도한 기사이거나 조작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유튜브 동영상에 불과할 뿐”이라며 “투표지 분류기 자체에 통신 기능이 있다거나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다는 객관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민 전 의원은 21대 총선 이후 “성명 불상 특정인이 투표 단계에서 서버 등을 통해 사전투표 수를 부풀린 뒤 위조된 투표지를 투입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중앙선관위 전산센터 현장검증을 통해 재검표 결과와 선관위의 개표 결과가 사실상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고 주장처럼 부정 행위를 하려면 고도의 전산 기술과 해킹 능력, 대규모의 조직,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도 원고는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망상, 선거음모론 등 마치 극우보수 유튜브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고 비판했다.
김판 박재현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