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마누라도 못 지키는 대통령이 나라를 지키겠냐. 윤석열 잘했다! 남자답다! 멋있다!”고 치켜세운 작가 이지성씨는 한때 인문학 멘토로 불렸다. 2010년 말 인문고전 독서법을 다룬 책으로 인기를 끈 게 계기였다. 이듬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독서 멘토를 맡아 화제가 됐다. 2011년 7월 만난 이씨는 “나는 특정 인사의 가정교사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참하게 사는 사람이 내 독자”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초대한 기업가 모임에서 ‘덕치경영이냐, 법치경영이냐’ 하는 토론이 벌어졌을 땐 “나(CEO)에게는 엄격하지만 직원에게는 관대한 것, 그것이 진정한 법치경영과 덕치경영 아니겠느냐”고 조언했다.
그런 이씨가 언젠가부터 세상에 파편 같은 말들을 내던지고 있다. 리더에게 춘풍추상의 자세를 권했던 그가 법치도 덕치도 아닌 윤 대통령의 계엄을 “실패해서 안타깝다”고까지 말한 것은 어떤 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계엄 방아쇠를 당긴 결정적 이유가 김건희 여사 때문이라는 분석 또는 짐작은 어느새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내란 사태 다음날 대통령이 김 여사를 지키려고 내란을 일으켰다는 취지로 해설했고 국민 다수는 이를 억측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인물도 김 여사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추동력으로 ‘영부인’을 지목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윤 대통령의 폭발 뒤에는 세 명의 김씨가 있다”며 김 여사를 제1 트리거로 꼽았다. 그렇게 보면 김 여사는 남편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 팜므파탈, 윤 대통령은 그런 아내에게 눈이 멀어 자멸한 남자다. 남편을 중심으로 보자면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아내를 위해 세상을 적으로 돌린 일이기도 하다. 한 중국 언론인은 한국 계엄 사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화선은 김 여사의 뇌물 사건이었다. 김 여사가 명품가방을 받은 혐의로 야당의 집중 추궁을 받았고,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계엄을 선포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나는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겠다!’ 이런 소재가 소설이나 영화에만 나오는 줄 알았다면 착각이다.”
독재 선언인 비상계엄은 윤 대통령 자신이 수호하겠다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선전포고다. 그가 계엄을 정당화하며 국회를 역적으로 만든 문장은 되레 자평으로 들린다.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돼야 할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읊은 담화문에서 ‘입법 독재’의 ‘입법’을 떼고 ‘국회’를 ‘대통령’으로 바꿨을 뿐이다.
아내에게 휘둘렸든, 아내를 위해서였든 윤 대통령은 권한을 멋대로 휘둘러 국정을 파탄내고 말았다. 이런 그를 사랑꾼인 양 묘사해주기에는 그가 저지른 일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 그래서 이 사태에 사랑 운운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려야 하지만 누군가는 작가 이씨처럼 “멋있다”고 호응할지 모르는 일이다. 영화 제목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를 차용한 이 글 제목은 그런 반응에 대한 대꾸로서 옮겼다. 원제가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건 황당함과 분노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용산에서 결사항쟁 중이다. 12일 내놓은 항변을 들어보면 확신범 행세를 하는 것인가 싶지만 결국 궤변이라 참작할 여지는 안 보인다. 끝이 보이는 그는 훗날 사람들 기억 속에 ‘사랑에 미친 사람’으로 남거나 ‘그냥 미친 사람’으로 남거나 둘 중 하나일 듯하다.
강창욱 디지털뉴스부 차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