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프로야구단의 최고참으로 선수단 회칙과 규율을 직접 만들었을 정도로 애정과 열정을 쏟았다. 주장으로서 좋은 팀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헌신했다. 앞장서서 훈련하고 경기에서 이기려는 남다른 승부욕을 보였다. 잔소리 대신 대화하고 조율하며 선수들의 본보기가 됐다. 팀을 떠나서도 보고 싶은 선배였고, 형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감독이 됐다. 지난 10월 22일 NC 다이노스의 제4대 감독이 된 이호준(48) 감독 얘기다. 야구팬들은 “‘호부지’(이호준+아버지)가 돌아왔다”며 반겼다. 호부지는 아빠 같은 마음으로 후배들을 이끈 그에게 팬들이 선수 시절 붙여준 별명이다.
이 감독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진행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NC 은퇴 선수 중에 첫 번째 감독이 돼 영광이고 스스로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후배들을 위해 길을 잘 닦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초대 감독이었던 김경문(현 한화 이글스 감독), 2대 이동욱, 3대 강인권 감독에 이어 4대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인터뷰 내내 밝고 유머러스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내년 시즌 구상과 선수단 구성에 관해 얘기할 땐 비장함이 느껴졌다. 인터뷰 동안 그에겐 초보 사령탑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준비된 감독이라는 인상을 줬다.
이 감독은 NC와 명운을 함께 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NC의 거의 모든 ‘처음’엔 이 감독이 있었다. 이 감독은 1994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프로에 데뷔해 해태-SK-NC를 거치며 24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2013년 신생 구단 NC의 첫 자유계약선수(FA)로 합류해 주장을 맡았다. 2014년에는 3위로 포스트시즌에 처음 진출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정규시즌 2위에 올랐다. 특히 2016년 ‘나테이박’(나성범-테임즈-이호준-박석민)의 화려한 중심타선을 앞세워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2017년 구단이 은퇴식을 열어준 첫 번째 은퇴 선수였고, 일본 연수 후 한국에 돌아와 첫 번째 코치 생활도 NC에서 했다. 타격코치를 지낸 2020년 구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도 누렸다.
올 시즌 LG 트윈스 수석코치를 지낸 이 감독은 상대 팀이지만 NC의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NC는 10개 구단 가운데 9위를 기록하면서 창단 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시즌이 한창이던 지난 8월 11연패에 빠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서 멀어졌고, 정규시즌 8경기를 남기고 감독을 경질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로 시즌을 마쳤다. 선수단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 감독이 구원 등판했다. 구단의 연락을 받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NC 선수 출신 감독이라는 중책을 받아들였다.
취임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특유의 소통 능력과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독려했다. 이 감독은 “성적이 안 좋은 팀은 시즌 초부터 선수든 코치든 불만이 많고 분위기가 안 좋다”며 “분위기도 좋고 의지가 넘치는 팀은 반드시 성적을 낸다. 스태프와 선수들이 함께 좋은 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우, 김성욱, 권희동 등 고참들에게도 팀 분위기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했다.
서재응 수석코치를 영입하면서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이 감독은 “서 수석코치 별명이 ‘나이스 가이’다. 더그아웃 분위기가 처지면 나서서 띄우고 헌신할 줄도 안다”며 “이번 마무리 캠프에서도 선수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서 수석코치가 ‘파이팅하고 힘내자’고 하니 다들 열심히 했다. 벌써 스프링캠프가 기대된다”고 했다.
내년 시즌 NC의 목표는 우승권에 드는 것이다. 그는 올 시즌 통합우승팀 KIA, 지난해 우승팀 LG를 투톱으로 꼽으며 NC가 3강 싸움을 할 것이라고 했다. 공격적인 야구를 선보여 팬들에게 재밌는 경기를 선사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 감독은 “무사 1루에 번트를 대거나 작전을 내기보다는 선수들을 믿고 알아서 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선발 투수진에 대한 힌트도 줬다. 외부 FA 영입은 없으나 2명의 외국인 선수와 내년 6월 상무에서 돌아오는 구창모에 더해 신민혁과 ‘신예’ 신영우까지 제 역할 해준다면 다른 구단과 비교해서도 최고의 선발진을 구축하게 된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다른 선발과 마무리 자원도 여럿”이라며 웃었다.
올 시즌 KBO리그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이 감독은 리그 관중 동원 1위인 LG(139만명)의 코치였다. 공교롭게 NC(75만명)는 관중 수 면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이 정말 부러울 정도로 평일이든 주말이든 관중들이 많이 찾아줬다”며 “팬들이 야구장을 떠나지 않고 대대손손 야구장에 올 수 있도록 더 좋은 플레이를 보여줘야 한다. NC도 최소한 5강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창원 관중들도 관중 동원 5위 안에 들 수 있도록 경기장을 많이 와달라”고 부탁했다.
감독으로서 첫 시즌, 어떤 야구를 하고 싶을까. 이 감독은 “취임식 때 ‘빅볼’을 얘기했는데, 홈런을 많이 치겠다는 게 아니고 공격적인 야구를 하겠다는 뜻이었다”면서 “불리한 볼 카운트가 되기 전까지는 공격적인 야구를 하고 팬들이 원하는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야구 선수의 ‘기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기든 지든 빠르고 힘 있는 야구를 하고 싶다”며 “타격 후 1루로 전력 질주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야구의 기본이다. 프로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선수한테는 절대로 기회를 주지 않겠다. 유니폼 입었을 땐 모두 팀의 일원”이라고 말했다.
파격적인 실험도 감행한다. 28명의 1군 엔트리 가운데 투수와 야수 한 자리씩을 비워 2군 스태프들의 추천을 받아 새로운 선수를 올릴 방침이다. 그는 “2군 코치진이 선수들을 추천하도록 하면 두 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첫 번째는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통은 선수들이 1군으로 올리는 결정 권한이 없는 2군 코치들 말을 잘 듣지 않는다. 2군 스태프들이 선수를 정확히 보고 올리도록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언젠가 감독이 되면 꼭 하려고 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선수로, 또 코치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선수 시절엔 우승해도 울지 않았으나 코치를 하며 2번의 우승(2020년 NC, 2023년 LG)을 맛봤을 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 그는 감독으로서 우승 반지 낄 날만 기다린다. 이 감독은 “자기 전에 NC가 우승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소름이 돋는다”며 “감독으로 우승을 한다면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