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도와줘)/이 순간의 느낌 함께 하는거야/다시 만난 우리의’
요즘 퇴근하고 국회의사당역으로 향하다 보면 쉽사리 들을 수 있는 노래다.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 울려 퍼진 이 노래가 국회 앞에서 연일 열리고 있는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도 어김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두려움이 와도 피하지 말고 헤쳐 나가라는 가사 덕에 ‘레전드 시위곡’으로 불린다.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노래다. 이밖에 로제의 ‘아파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 등도 ‘탄핵 플리(플레이리스트)’에 속한 노래들이다.
시위 참가자들이 떼창을 하면서 빼놓지 않고 흔드는 것이 응원봉이다. 과거 손에 촛불을 들고 집회에 나섰다면 이번 집회에는 아이돌 콘서트에서 사용하는 응원봉을 흔들며 흥을 돋우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콘서트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통념과 달리 집회 현장으로 달려오는 20~30대 여성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장년층 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자칫 험악할 수 있는 집회 현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군다. 아이돌 응원봉이 시위 필수 아이템으로 떠오르면서 e커머스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관련 거래가 급증할 정도다.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에는 ‘응원봉을 들고 모이자’고 독려하는 글이 올라오거나 ‘탄핵봉(탄핵과 응원봉을 합친 말)’ 만드는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외신들도 이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K팝 야광 응원봉이 한국의 탄핵 요구 시위에서 불타오르다’라는 제목으로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K팝의 흥겨운 정취가 한국의 정치적 혼란상을 가려주고는 있지만 시위 참가자들이 현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MZ세대의 발랄한 시위 문화가 ‘반복되는 역사적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는 셈이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