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한국 사회 전체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며 혼란에 빠졌다. 상식과 원칙이 무너진 사회, 정치 부재에 대한 위기감은 평범한 시민들을 한겨울 차가운 거리로 내몰았다.
위기마다 한국교회는 구국 기도회를 열며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염원해 왔다. 힘겨워하는 국민에게 위로와 사랑을 나누고, 신앙과 희망을 되살린 기도는 실제 변화를 끌어낸 행동으로 이어졌다. 개인과 나라의 운명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믿음의 선진(先進)은 어떻게 기도했을까. 각종 전쟁과 억압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간구한 이들의 기도를 들어본다.
국가 위기, 기도로 극복한 한국교회
1950년 6·25 당시 전쟁 발발 40여일 만에 남한 대부분이 북한군에 점령당했다.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내려왔을 때 한국교회는 부산 초량교회 중앙교회 항서교회 광복교회, 구 경남도청, 부산 구덕운동장, 해운대 백사장 등 여러 장소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상동 박형룡 박윤선 목사를 중심으로 한 구국 기도회는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간절한 기도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5000분의 1 확률을 뚫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의 수도를 해방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는 13일 “6·25전쟁 당시 부산 초량교회 새벽 기도회처럼, 국가적 위기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가 많다”며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믿으며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한국교회는 그 중심에 있었다.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인 1997년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여전도회관 앞에서 100여명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원들이 40일 특별 기도회를 열며 외화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교계 원로들도 비상시국간담회를 열고 15개 교단장도 시국 성명을 발표하며 회개 기도와 근검절약 운동에 동참했다. 전국 교회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위기 극복을 간구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교회는 깊은 슬픔을 위로하는 자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슬픔을 당한 가족과 함께하는 기도 주간’을 정해 슬픈 자와 함께 울며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간구했다.
“주님,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이 땅의 라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뜻하지 않은 시간에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가족을 잃은 이들을, 슬픔의 강물에 떠밀리고 있는 모든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가슴 속에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존자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이 땅의 청소년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품으로 안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십시오.”
예배와 전도의 본질을 약화하고 많은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암흑과 절망을 견뎌낼 때 기도는 다시 소망을 이야기했다. 세계교회연합기도운동은 2021년 공동기도문을 통해 ‘코로나19 소멸을 위한 성령강림절 기도 행동’을 선포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이 어려운 시대를 맞고서야 이 땅의 신음과 파괴의 결과를 알았습니다. 인간의 활동이 억지로 중단될 때 우리는 파괴된 자연 만물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으며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질서의 파괴와 감당할 수 없는 감염병은 결국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징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고통의 시간을 줄이시고 이 땅을 고쳐주옵소서.”
오순절 성령 강림 역사처럼 나라와 언어를 넘어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기도로 하나가 되기를 소망하는 기도였다.
“두려움이 나를 다스리지 못하게” 위기 이겨낸 기도
위기에 대응한 기도는 역사를 남겼다. 1861년 미국은 흑인 노예제도 종식을 위해 남북전쟁을 치르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들고 3차례 국가 금식기도일을 선포했다. 특히 전세를 뒤집은 2차 금식기도일 선포문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지금 이 나라를 황폐시키는 남북전쟁의 참화는 우리의 교만한 죄로 인해 받게 된 형벌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허한 자세로 국가적 죄를 고백하고, 자비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국민이 합심하여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돼 축복으로 응답받을 것이며 지금 분열되어 고통당하는 이 나라가 평화와 화합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횡포에 캄캄했던 시대,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두려움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지 않길’ 간절히 기도했다. “오, 주 하나님 크나큰 곤경이 저를 덮쳤습니다. 걱정 근심이 저를 삼켰습니다. 저를 위로하시고 도와주소서. 당신이 주시는 것들을 견뎌내도록 저에게 힘을 주소서. 두려움이 저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은 저를 잊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저를 찾아내십니다. 제가 당신을 알고 사랑하기를 당신은 간절히 바라십니다. 주님, 당신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제가 당신을 따라갑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절망에서 지켜줄 믿음을 저에게 주소서. 당신과 다른 모든 이들을 향한 사랑을 제 속에 담아주시어 그 어떤 증오에도 고통에도 오염되지 않게 하소서.” 루터교회 목사이자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반나치 운동을 펼쳤던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기도와 함께 정의를 실천하는 것과 평화를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사명임을 역설했다.
종교적 박해와 갈등,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7세기 영국의 존 던은 고난과 억압 중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그의 선하심을 깊이 신뢰하는 기도를 남겼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당신은 저를 많은 위험 속에서 이끌어 주셨지만 저는 여전히 완전하지 못합니다. 저에게 당신의 힘을 허락하사 모든 시험을 견디게 하시고 제가 행하는 모든 일에서 당신을 영화롭게 하소서. 제 고난이 당신의 선하심을 증거하게 하시고 당신 안에 있는 제 피난처가 안전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역사의 변곡점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고, 그 개입은 기도를 통해 이뤄졌다. 위기를 넘게 한 기도엔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그 선과 평화를 추구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 겪어본 적 없는 정치적 혼란과 반목을 겪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도 그러한 기도다. ‘권력과 신앙’을 펴낸 추태화 이레문화연구소장은 “기독교인의 기도조차 좌우 이념에 따라 갈리는 상황”이라며 “영적이고도 정치적인 어려움에 깊이 빠진 우리 민족이 시험에 빠지지 말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복음서 속 예수께서 가르친 주기도의 형식을 따라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선한 통치를 간구하자”고 제안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33:12)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양민경 최기영 조승현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