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류승범 “가족 생긴 뒤 인생 확장… 서툰 아빠 철희에 공감”

입력 2024-12-14 05:44
류승범은 ‘가족계획’을 통해 연기 생활 최초로 아빠를 연기했다. 그는 “배우로서 연기를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책임감도 생긴다. ‘진짜 남자’ 연기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플레이 제공

‘패션의 아이콘’ ‘힙한 배우’로 통하던 류승범이 아빠가 되어 돌아왔다. ‘진짜 아빠’가 된 그가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아빠를 연기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범은 “전에는 아빠 역할 제안도 없었다. 아빠가 된 이후로 배역 선택도, 삶의 방향에 있어서도 시야가 확장된 느낌”이라며 “‘가족계획’을 선택한 건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전작 ‘무빙’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019년 슬로바키아 출신 여성과 결혼하고 이듬해 득녀 소식을 전한 류승범은 간간이 영화, 드라마 등 작품으로만 얼굴을 비춰왔다. 언론 인터뷰는 9년 만이다.

류승범은 “내가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한동안 활동을 안 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지내지 않은 시기도 있다보니 잘 안 보이는 사람이 돼버렸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아이 스케줄에 맞춰 돌아다닌다’고 말하는 영락없는 아빠가 돼 있었다.

‘가족계획’의 주인공 가족은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다. 엄마 영수(배두나)는 자유자재로 타인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브레인 해킹’ 기술을 가지고 있다. 쌍둥이 지훈(로몬)과 지우(이수현)는 천재적인 해킹 실력과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덤벼드는 악바리 근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빠 철희만큼은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혹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봐 온 아빠의 모습이다. 평소엔 영수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늘 한 발짝 뒤에 물러나 있지만, 가족이 위험에 빠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 ‘나쁜 놈’들을 사정없이 응징하는 아빠다.

류승범은 실제 아빠가 된 뒤로 철희에게 더 많이 공감했다고 한다. 그는 “철희는 진짜 어른인 아빠보다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훈련하는 단계의 인물”이라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뒤로 빠져있고, 찌그러져 있지만 잘못 건드리면 큰일난다”고 설명했다.

처음 아빠를 연기한 기분을 묻자 류승범은 “생소하기보다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고 답했다. 강한 캐릭터나 장르를 연기할 때 감정을 쏟아내는 것과는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어서다.


그는 “지금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배우로서 연기를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책임감도 생긴다”며 “20대 때는 언제 40대가 돼서 ‘진짜 남자’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그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딸이라는 가족이 생긴 건 크나큰 변화의 기점이었다. 특히 딸의 탄생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류승범은 “아내도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전에는 자유롭게 많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뿌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며 “전에는 위로 솟구쳤다면 지금은 밑으로 내려오는 느낌이다. 딸은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비로소 가족을 이루게 된 것 같다는 류승범은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이런 역할을 하면서 잠깐이지만 미래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작품에서 딸이 반항하는 걸 보니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수현이를 보면 내 딸이 저렇게 크면 좋겠다 싶은데, 주변 형들이 (자식이) 10대가 되면 반항한다고들 하니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배우로서도, 인간 류승범으로서도 새로운 삶의 챕터를 연 그는 “작은 바람은 우리 아이가 볼 수 있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는 거다. 지금은 아이가 볼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19세 관람가라서) ‘가족계획’도 못 보게 생겼다”며 “이 시기가 지나기 전에 아이가 볼 수 있는 그런 작업을 꼭 기록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