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시인의 소명, 정치인의 소명

입력 2024-12-13 00:34

얼마 전 용산 자작나무 책방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석했다. ‘김사인 함께 읽기’(모악, 2024)라는 책 출간을 기념한 자리였다. 이 책은 김사인 시인의 동료이자 선후배들이 그와의 인연에 대한 소회나 시에 감상을 곁들인 책으로,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의 제안으로 출간됐다. 하지만 그날은 비상계엄 이후 대규모 탄핵 집회가 있는 날이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많은 이들이 국회로 향했다. 스승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 바로 이곳이 여의도와 광화문 아니겠습니까.” 과거에 스승은 ‘서울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미수 사건’으로 구속됐고, 1980년대 요주의 인물로 수배돼 고초를 겪은 바 있다.

스승에게 ‘계엄’이라는 말의 체감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이제껏 내가 누린 일상의 자유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스승은 간곡히 말했다. “시를 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은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사무친 말, 탄식이든 통곡이든 살아 있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혼신, 애씀을 통해 말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만 시의 본래 자리로 갈 수 있습니다. 동족의 귀가 되어 절실한 말과 비명을 발하는 자, 그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 시이고 시인입니다.”

시인에게 ‘말’이라는 소명이 있듯이, 정치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민들이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의원들 이름을 외치던 7일 밤. 입장을 바꿔 표결하러 나선 국민의힘 의원을 보고 누군가는 손뼉을 쳤고, 누군가는 눈물을 내비쳤다. 나는 잠시 의아했다. 표결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국회의원의 마땅한 임무인데, 왜 저들이 박수 받아야 하는가. 나는 그런 것에 ‘용기’라는 단어를 내주고 싶지 않다. 누가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가. 권력의 눈치를 보며 귀를 막는 자는 누구인가. 여야나 정당의 논리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똑똑히 보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의 얼굴을.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