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불확실성의 격랑에 빠져들었다. 정국 혼란으로 인한 불안과 혼돈은 성탄과 새해를 대망하는 교회의 연말 분위기에도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어떤 소망을 품고 어떤 말씀에 기대 나아가야 할까. 신간 가운데 현 시국에 읽을 만한 설교집과 성경해설서 2권을 골랐다.
‘하나님의 침묵’(두란노)은 나치 정권에 맞선 독일 신학자인 헬무트 틸리케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부터 전후 냉전 시기인 1951년까지 독일 교회 강단에서 전한 내용을 엮은 설교집이다. 책 속 10편의 설교에서 틸리케의 어조는 시종일관 강경하고 절박하다. “묵상만으로는 위로받을 수 없는 극한의 시련기에 선포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설교마다 그가 강조하는 건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이다. 엄혹한 시대일수록 그리스도만이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발 더 나가 위기조차 ‘인간을 찾아온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해석한다. “삶에서 가장 복된 때는 양지바른 언덕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어둠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보내기만 한다면 말이다.”
미래를 향한 두려움과 불안은 그리스도께 맡길 때 근원적으로 해결된다고 본다. 그는 “성경에서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요일 4:18)이라며 “세상에 내 아버지가 있다는 것과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그리스도 안에서 알 때 불안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위기 상황 시 중보기도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불안하고 산만한 세상에서 중요한 건 기도하는 이들의 존재 자체”이므로 “온 나라를 기도로 짊어지는 적은 (수의) 무리가 있다면 그 민족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믿으면 다 잘 된다’는 무조건적 낙관론으로 점철된 건 아니다. 전쟁이 이어진 당대 상황을 반영하듯 “역사의 여정은 점점 어두워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길을 잃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무지개가 어두울 때 가장 빛나듯 그분도 가장 깊은 밤에 가장 큰 사랑으로 (인류에게) 손을 내미신다.”
저명 신약학자인 스캇 맥나이트 미국 노던신학교 교수와 그의 제자 코디 매칫이 공저한 ‘남은 자들을 위한 요한계시록’(성서유니온)은 대중을 염두에 두고 알기 쉽게 쓴 계시록 해설서다. 이들은 계시록이 “특정 시간을 예측하는 신묘막측한 예언서”가 아니라 “특정 시대를 넘어서는 신학”임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계시록을 ‘휴거’나 ‘천년왕국’ 등 기독교 종말론을 다룬 본문으로만 오독하면 ‘불의한 체제에 대항하는 제자가 돼라’는 시대 초월적 메시지를 놓칠 수 있어서다.
저자들이 말하는 ‘반체제 제자’란 “세상과 교회의 타락을 분별하며 부패 등 기존 체제의 폐습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세기 로마 제국의 관점에서 보면 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 역시 “외딴 섬에 유배된 불온한 반체제 인사”였다. 그럼에도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 그리스도가 주인인 ‘새 예루살렘’이 세속 권력의 최정점을 상징하는 ‘바벨론’을 이긴다고 기록했다. 로마 제국이 식민지인 예루살렘에 패한다는 걸 돌려 설명한 ‘위험천만한 상상력’이었다. 저자들은 “지구촌 각 나라에 부패가 넘치고 이에 교회가 공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벨론은 지금도 실재한다”며 “이것이 지금 당장 계시록을 펴고 이대로 살고자 하는 ‘불온한 제자’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이들은 2016년 대선을 기점으로 드러난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민낯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종교 용어였던 미국 복음주의는 어느덧 정치적 신념을 뜻하는 단어가 됐고, 교회와 우익 세력의 결탁으로 탄생한 ‘기독교 국가주의’도 존재한다. 저자들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정치적 제자도’”라고 강조한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로는 ‘정치 지도자를 위한 기도’를 든다. 기도 내용과 방법도 조언하는데 여기엔 이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이것이다. “주여, 긍휼을 베푸소서.” 우리 상황에도 꼭 필요한 기도 문구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