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유튜버 부정선거 음모론에 발목잡힌 尹

입력 2024-12-12 04:00 수정 2024-12-12 04:00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해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선관위 CCTV 화면에 잡혀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동기를 규명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계엄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병력이 실제 투입됐을 뿐 아니라 계엄 선포 이후 공개된 14명의 ‘체포조 명단’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조해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극우 유튜버들을 통해 확산됐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계엄 선포 동기가 됐는지 수사를 통해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전날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상대로 계엄 선포 사전 인지 여부와 선관위에 방첩사 요원을 투입한 경위 등을 추궁했다. 앞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선관위 병력 투입은 ‘부정선거 의혹 수사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특수본은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도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4일 경주 봉황대 연설에서 “부정선거를 획책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살 수 없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3월 6일 경기도 의정부 연설에서도 “투표관리는 상당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선관위가 썩으면 민주주의는 망한다”며 “지금 선관위가 정상적 선관위가 맞느냐”고 했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인식은 당시 윤석열캠프 문건에도 드러난다. 신용한 전 윤석열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 언론에 공개한 2021년 12월 29일 ‘부정선거 관련 관리대책’ 문건을 보면 ‘양정철 개입설’ 항목에 ‘양정철은 민주연구원장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와 정책 교류 협약을 체결→중국 개입설’이란 내용이 적혀 있다.

2020년 총선에서 양 전 원장이 빅데이터를 도입해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을 이끌자 극우 유튜버들 사이에선 “공산당과 양 전 원장이 협약을 체결한 건 중국의 빅데이터 시스템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상 ‘중국의 선거 개입설’을 제기한 것이다.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네트워크로 선관위 개표를 조작할 수 있다”며 사전투표 조작설까지 떠돌았다. 양 전 원장은 빅데이터 사용과 관련된 혐의로 고발됐으나 경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2022년도 1월부터 3월 9일 대선까지 9차례 정도 부정선거 관련 회의 내용이 있었고, 후보 직속으로 관련 기구가 설치됐다”며 “캠프 수뇌부가 집단적으로 부정선거설에 세뇌당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양 전 원장은 김 전 장관이 직접 불러줬다는 ‘체포조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김 전 장관을 구속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부정선거 의혹 확인 차원에서 양 전 원장 등을 체포조 명단에 포함시킨 것인지도 조사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2020년 총선을 앞두고선 “이번 선거를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게 치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했었다. 당시 검찰 참모진은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음모설 동조론에 대해 경악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을 보좌했던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원래 그런 분이 아니었는데 정치권에 입성한 후 검찰 인맥과 대부분 멀어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특정 정치권 인사나 극우 유튜버 등을 접촉하면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고를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현 송태화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