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일본, 13개 도시 역사로 보는 그들의 낯선 모습

입력 2024-12-13 04:55
일본에서 도쿄에 이어 ‘제2의 도시’로 볼리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오사카성’. 책은 일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13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낯선 일본사를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게티이미지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오해를 사거나 의가 상하기 쉽다. 오히려 가까울수록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상대방의 본심과 속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상대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일본 도시사를 연구해 온 저자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 가진 생각이다. 저자는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시선을 갖기 위해 ‘도시’에 주목했다. 책은 일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13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낯선 일본사를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최근 일본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가벼운 여행서가 넘쳐나는 요즘, 도시에 집중하는 색다른 시도를 통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소개되는 각 도시에는 그 도시만의 역사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 전체가 녹아 있다. 하나하나를 연결하면 전체적으로 일본 통사(通史)가 된다.

교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 도시이자 천년 고도이다. 저자는 바둑판 같은 도로망을 가진 계획 도시 교토, 천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역사 도시 교토, 도쿄에 그 지위를 빼앗긴 후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한번 부흥을 꿈꿨던 교토의 역사를 훑는다. 여전히 교토는 ‘역사 문화 도시’의 위상을 확고히 간직하고 있다. 2018년 기준 13곳에 이르는 세계유산과 212점에 이르는 일본 국보, 3000여곳의 신사와 사원이 있다.

저자는 교토가 현재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행운·우연과 함께 시민 사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교토는 도쿄와 오사카 같은 대도시와 달리 미군의 대규모 공습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군은 사실 히로시마 등과 함께 교토를 원폭 투하 최종 후보지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도쿄, 오사카와 달리 나중에 감행할 원폭 투하의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공습 대상에서 교토를 제외한 것이다. 막상 원폭 투하지를 결정하는 최종 회의에서 역사 문화의 중심지인 교토에 원폭을 투하하면 미국에 대한 일본 국민감정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최종 후보지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 전시경제의 호황을 발판 삼아 고도 경제성장기에 돌입한다. 교토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도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거친 후 역사문화 도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산물이 모이고 유통된다고 해서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으로 불려왔다. 저자는 오사카성을 쌓고 각지의 상공인을 불러들여 상공업 도시 오사카의 기틀을 세운 도요토미 히데요시, 양조업에서 시작해 해운·금융업까지 장악했던 고노이케 유키모토 등의 인물을 내세워 오사카의 역사를 살펴본다.

도쿄와 자존심 싸움을 벌였던 오사카는 이제 도쿄를 따라잡기는커녕 요코하마와 나고야의 도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약화할수록 오사카에는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오사카 사람’의 기질과 개성을 중시하는 ‘오사카론’이 유행하고 있다. 지역 연고 프로야구 구단인 한신 타이거스를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 한 켠에는 불안감과 박탈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는 일본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고대 도시 아스카를 비롯해 근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성장을 거듭한 도쿄와 요코하마 등의 도시들도 찾아간다. 책 머리에는 일본 역사를 일별할 수 있는 연표와 도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가 배치됐다. 천황의 유래와 기온마쓰리 같은 일본 전통 축제에 대한 아기자기한 설명도 곁들였다. 일본의 도시를 여행하기 전이나 후에라도 찾아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언제나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까.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