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다시 갈림길에 섰다. 한 대표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위헌·위법’이라고 규정하면서도 탄핵 대신 ‘질서 있는 퇴진’에 무게를 뒀지만, 대통령실조차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한 대표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 측과의 ‘최종 담판’마저 소득 없이 끝나면 한 대표가 탄핵 찬성 뜻을 표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정국 안정화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이양수 의원은 1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부터는 대통령을 설득하는 시간”이라며 “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잘 설득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TF는 전날 윤 대통령의 내년 2·3월 퇴진, 4·5월 대선 시나리오를 당 지도부와 의원총회에 보고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조기 퇴진 로드맵에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친한(친한동훈)계 김종혁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쪽(대통령실)에서 대통령 의중이 (조기 퇴진보다) 탄핵 쪽으로 갔다고 하더라”며 “그렇게 되면 결국은 탄핵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 주변에서는 “대통령 본인이 탄핵으로 가 달라고 하는 상황에서 임기 단축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푸념도 나왔다. 한 대표는 측근들에게 오는 14일 예정된 2차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때는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나가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1차 표결 때처럼 ‘집단 불참’ 방식으로 개표를 무산시킬 의사는 없다는 얘기다.
현재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대표가 보인 행보에 대해 당 안팎에서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이다. 한 대표는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를 국민과 막겠다”며 계엄해제 요구안 의결에 일조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에 대해 체포 지시를 내렸다며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도 공개 요청했다. 하지만 1차 탄핵안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5일에는 탄핵 저지를 끝내 당론으로 결정했다.
한 대표가 지난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여당 중심의 국정 안정화 방안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여러 말들이 나온다. 당 중진들은 “한 대표가 중요 결정을 내부 협의도 없이 혼자 내리고 있다”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성난 민심과 ‘탄핵은 안 된다’는 당심 사이에서 한 대표가 갈피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여론 압박이 거세지면서 여당의 탄핵 방어선도 점차 헐거워지고 있다. 한 대표가 당의 상황을 분명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14일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 현 리더십 붕괴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최고위원들은 탄핵 가결 시 직에서 물러난다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당헌 96조에 따라 최고위원 4명이 사퇴하면 지도부는 무너지고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된다.
이종선 정우진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