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노무현정부가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면서 핵심사업으로 설정한 제주평화연구원의 평화 연구 기능이 전면 중단 위기에 처했다. 외교부와 제주도는 매년 국고보조금과 출연금 지급을 통해 연구·운영비를 지원하는데, 제주도 예산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도의회 심의에서 전액 삭감조치됐다.
11일 제주도에 따르면 내년도 본예산안에 편성한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사업비 5000만원이 전액 삭감됐다. 제주도의회 예산결산위원회가 지난 3일 계수조정에서 연구원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10일 본회의를 통과해 최종 확정됐다.
도는 2년 전에도 도의회 심의 과정에서 본예산 편성액이 전액 잘린 뒤 추경 반영에 실패해 2023년도에 연구사업비를 한 푼도 편성하지 못했다. 2024년도에는 당초 요구액 5000만원이 전액 삭감된 후 추경을 통해 3400만원을 겨우 살려냈다.
문제는 제주도의 평화연구원 예산이 매년 줄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2억1800만원에서 2021년·2022년 각 1억4400만원으로 34%가량 삭감됐다. 지난해엔 예산이 아예 미편성됐다. 올해도 0원인 상태다.
외교부에서 연구원에 내려보내는 국고보조금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제주평화연구원이 소속된 국제평화재단에 따르면 2022년과 2023년 각 3억1600만원에서 올해는 1억800만원으로 66%나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 협력을 위한 정책적 방안을 제시해 평화 연구의 산실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주평화연구원은 박사급 연구원이 단 2명뿐인 소조직으로 정상화가 요원한 상태다.
제주평화연구원이 주관하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도 당초 취지를 잃고, 백화점 나열식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2005년 정부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도둑·거지·대문이 없는 제주도의 ‘삼무(三無)’ 공동체 정신과, 4·3의 비극을 겪으며 평화에 대한 갈망을 품어온 점이 배경이 됐다. 정부는 ‘세계평화의 섬’ 이행을 위해 17대 평화실천사업을 확정하고, 이듬해 제주도에 제주평화연구원을 설립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