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읽고 쓰는건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의 반대”

입력 2024-12-12 00:15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작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123년 역사상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 수상이다.

한강은 시상식 이후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이어진 연회에서 4분여간의 수상 소감을 영어로 밝혔다. 그는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한강이 이날 받은 증서. 노벨상 공식 엑스 계정 캡처

한강의 문학관은 어린 시절 주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폭우를 피하던 기억에서 시작됐다. 그는 “저와 나란히 비를 피하는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서 비를 피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서 살고 있었다”며 “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책을 읽고 글을 쓴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며 “언어의 실타래를 따라 마음의 깊은 곳에 들어가면 다른 내면과 마주한다”고 했다. 그리고 글쓰기를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질문을 실타래에 맡기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한강은 “어릴 적부터 우리가 태어난 이유와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면서 “이는 수천년 동안 문학이 던져왔으며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우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고 질문했다.

한강은 “가장 어두운 밤에도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를 일인칭의 시점으로 상상하는,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가 있다”면서 “이런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이 왜 생명을 파괴하는 것과 반대의 위치에 있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앞서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식에서 5분가량의 연설을 통해 한강의 작품들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맛손은 한강의 주요 작품을 관통하는 색상이 ‘흰색’과 ‘빨간색’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면서 “빨간색은 삶,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통과 피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녀의 (작품 속) 목소리가 매혹적일 만큼 부드러울 수는 있으나,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흰색과 빨간색은 한강이 작품 속에서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