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눔박스… 상가 쿠폰 선물… 택시 타기 캠페인도… 꽁꽁 언 자영업 경기… 교회가 온기로 녹인다

입력 2024-12-12 03:00
서울 금호중앙교회가 지역주민을 위해 마련한 이웃사랑 나눔박스(왼쪽)와 지역 상가이용 상품권. 금호중앙교회 제공

내수 부진에 계엄과 탄핵 정국이 맞물리며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연말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빙하기를 녹였던 한국교회의 따뜻한 사역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경기가 움츠러들 때마다 어려운 이웃들의 곁을 지켜온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요청이 나온다.

10일 저녁, 경기도 부천역 일대 번화가는 조용했다. 연말 특수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한 블록꼴로 세입자를 찾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일부 상점 현관문엔 “권리금을 받지 않겠다”는 전단과 함께 공인중개사 전화번호와 명함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1991년부터 이 지역에서 택시 운전을 해온 김승철(68)씨는 “체감 민생경제가 최악 수준”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기업과 식당이 불황이면 택시도 덩달아 불황”이라며 “어렵다 어렵다 해도 평소 하루에 20명은 태웠는데 요즘엔 15명도 어렵다. 계엄 사태 이후 저녁 승객이 특히 줄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침 7시50분부터 저녁 9시까지 운행했지만, 요즘은 8시면 퇴근한다”며 “경제가 빨리 좋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수가 위축됐을 때 한국교회는 경제 활성화에 나선 경험이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는 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질 당시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 기금 100억원을 기부했는데, 지원 대상에 영세 소상공인이 포함됐다. 서울 광림교회(김정석 목사) 역시 팬데믹 당시 서울과 경기 지역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광림 선한소비운동’을 전개했다.

시절과 무관하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애쓰는 교회들의 사역도 눈길을 끈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 주요 절기에 맞춰 지역 공생 사역을 펼치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서울 신길교회(이기용 목사)는 부활절마다 교인들에게 전통시장 상품권을 나눠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엔 대신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 1억5000만원을 마련해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교인과 새가족 등 5000명에게 제공했다. 이기용 목사는 “대신시장 상인회와 계약을 맺어 교회 이름으로 상품권을 발행한다”며 “7년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올 추수감사절에도 온누리상품권 5000만원을 전도 대상자에게 나눠주는 등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한 나눔을 실천했다.

서울 금호중앙교회(안광국 목사)는 부활절 헌금 전액을 '이웃사랑 쿠폰'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쿠폰은 지역 상가에서 쓸 수 있고, 지역 주민센터와의 협력으로 소외계층에 전달되고 있다. 어려운 이웃과 소상공인을 동시에 돕고 있는 셈이다.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는 택시 기사들을 위한 '택시 타고 교회 오기' 캠페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경남 김해교회(정의식 목사)는 매월 넷째 주일을 '전 교인 택시타기 운동'으로 지정하고, 교인들이 택시를 이용하도록 독려한다. 서울 은평구 구파발교회(김춘곤 목사) 역시 지난 11월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택시 타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경남 김해교회가 매월 넷째 주일에 진행하는 전 교인 택시 타기 캠페인 포스터. 김해교회 제공

재능을 활용해 어려운 자영업자를 지원하기도 한다. 우이중앙교회 부교역자인 서정모 목사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식당 홍보 영상을 만들고 있다. 유튜브 채널 '물어목사'를 운영 중인 서 목사는 영상제작팀과 함께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찾아가 매장 홍보 영상을 제작해준다. 영상은 업주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되고, 서 목사 유튜브 채널에도 업로드된다. 서 목사는 "기독교 커뮤니티가 서로를 돕는 운동으로 확산하길 바란다"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의 가게를 기독교인들이 찾아주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현표 총신대 교수는 "계엄사태 이후 나라가 뒤숭숭해지고 국민은 전부 다 의기소침해진 것 같다"며 "이런 시기야말로 교회가 지역주민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웃에 대한 교회의 영적·정신적 위로는 물질을 통해 전달된다"며 "작은 교회라도 비품을 구매하거나 회식을 진행하는 식으로 지역 상권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동준 이현성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