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철(사진)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11일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경제 여파에 대해 “해외에서 한국을 보는 시선이 불안해지고 투자를 꺼리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런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고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 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2024년 KDI 컨퍼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의 정국 혼란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 외환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주제는 한국 경제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개혁 방안이었다. 그러나 취재진 질문은 계엄 사태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집중됐다. 조 원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행사를 진행하는 게 맞는지 고민도 했던 게 사실”이라며 운을 뗐다. 이어 “(계엄 사태가) 일주일 정도 됐는데 주가나 환율 등 금융시장 변동성은 아직까지 크지 않고, 상황이 바뀌면 굉장히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조 원장은 외환시장 불안 우려에 대해 “외환보유고가 충분한 데다 해외에 갖고 있는 순자산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50%인 상황”이라며 “이런 나라가 외환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일축했다.
조 원장은 내년도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가 잇달아 낮아지는 추세에 대해 “잠재성장률이 2% 위에서 그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흐름인 것은 틀림없다”고 진단했다. 올해 내내 정부와 내수 진단이 엇갈렸던 상황에 대해선 “같은 지표에도 정부와 KDI의 기준선이 달랐던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선 “관세 장벽 문제는 한국 입장에선 틀림없는 부담”이라면서도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질 거라는 시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KDI는 이날 행사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과감한 교육·노동·규제 개혁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온 한국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 하락세를 겪고 있다”며 “당장의 성과에 매몰돼 구조 개혁을 외면하면 10년, 20년 뒤엔 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행사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해 축사할 예정이었지만 국회 긴급현안질의 출석으로 불참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