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내 주의 보혈은’ 254장(통18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장 4~5절
세례 요한이 감당한 ‘하나님의 특사’ 역할이 우리에게 함의하는 바를 계속 살펴보는 중입니다. 과거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한 세례 요한은 오늘날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세상에게 어떻게 그분을 소개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 가르쳐줍니다. 앞에서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고 섬기는 증인의 자질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정의하는 그리스도의 사신(고후 5:20) 역할도 본질에서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 보여주는 증인의 다른 자질은 왜곡하거나 물 타지 않은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의탁하신 말씀을 올곧게 전하는 것이 참된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빙자해서 자기 생각을 내세우거나 사심을 챙기는 자를 성경은 거짓 선지자라 칭합니다. 안타깝게도 과거와 현재의 교회에는 그런 빗나간 자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특사’ 역할을 감당한 방식은 세상의 기대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한 것인데 개종이 아닌 회심의 추구가 그것입니다.
초기교회 역사학자 알랜 크라이더는 그의 책 ‘회심의 변질’에서 기독교왕국(Christendom) 시대 이래 성경이 정의하는 회심의 개념이 변질했다고 비판합니다. 초기교회가 이해하고 실천한 회심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왜곡되고 희석됐는지 돌아보고 성경적 회심의 개념과 실제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책입니다. 신약교회와 초기교회는 세례 요한처럼 성경이 말하는 회심을 추구했는데 기독교왕국 시대 이후 제도적 교회는 개종을 추구한 듯합니다.
사실 성경은 종교를 바꾸는 개종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회심자는 당연히 공동체의 모임이나 예배에 동참하겠지만 이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처럼 교회에 몰려드는 많은 사람을 회심자로 단언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중세교회의 문제는 교인 수 감소가 아니라 교회에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데 있었습니다. 현대 교회의 문제도 같습니다.
회심은 단순한 종교 갈아타기(개종)가 아니라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혁입니다. 지난 며칠간 살핀 대로 회심은 주인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마치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천동설) 줄로 착각하던 사람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지동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몰려든 군중이 원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회심자가 되어 반역하는 세상에 회심을 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 :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은혜로 베풀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우리도 온전한 진리를 붙들고 성경이 가르치는 회개의 세례를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민영 은퇴 선교사 (전 국제위클리프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