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정우성을 다시 소환하다

입력 2024-12-12 00:37

윤석열 대통령의 누구도 예상 못한 비상계엄 선포로 정국 혼란이 이어지기 전 단연 이슈는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 논란이었다. 중요한 시기마다 정치적 소신 발언을 내왔던 정우성을 향한 비아냥도 있었지만 건전한 토론이 볼만했다.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가한 얘기나 하고 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꼭 필요한 논쟁과 정책들이 휩쓸려 버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정우성을 소환해 본다.

정우성의 사례는 전통적인 가족과 결혼 제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우리는 늘 가족을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만 생각했다. 결혼은 출산으로 이어지고 낳은 자식은 양육해야 하는 게 기본 공식이었다. 결혼이 전제돼야 모든 게 ‘정상’이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의문을 정면에서 제기했다. 그는 “함께 아이를 낳았다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불문하고 혼인을 해야 하고 동거·부양 의무를 지며 부부로 살아야 한다니. 왠지 숨이 막혀 온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혼외자’라는 명칭도 문제 삼았다. 그는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아이를 혼외자·혼중자로 구분해 부르는 것 자체가 정상성에 대한 지독한 강조이자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부모를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시각이고, 아무 책임도 없는 아이에게 부정적 낙인을 찍는 용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봤던 것이 점차 정상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건 통계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20~29세 청년층의 42.8%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10년 전보다 12.5%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실제 비혼 출산은 해마다 늘어 지난해 전체 출생아의 4.7%(1만900명)에 달했다.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였다.

정우성은 아이 양육을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양육비이행법 입법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미혼모가 신청한 양육비 이행률은 33.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부(53.9%)와 이혼모(59.5%)에 비해 이행률은 훨씬 낮았다.

비혼 출산 증가에 따른 법적·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논란의 와중에 ‘비혼 출산’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차별이라든지, 여러 가지 제도로 담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어떤 면을 지원할 수 있을지 앞으로 더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비혼 출산 문제를 저출산 대책 차원에서 접근하는 논의도 분출하고 있다. 경북도는 도내 비혼 출생아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부모 및 법률혼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전환하는 조례를 제정키로 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등록 동거혼’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등록 동거혼은 남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동거 신고’만 하면 국가가 기존 혼인 가족에 준하는 세금 및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나 의원은 “2016년 국회 저출산특위 위원장 시절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측 전문가는 저출산 극복의 주요 원인으로 서슴지 않고 등록 동거혼을 꼽았다”고 설명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생활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지난 21대 국회에 이어 이번에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독교계에선 등록 동거혼 제도 등 가족 형태의 변화가 자칫 동성 커플 합법화를 의미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탄핵 정국에 언제 끝날진 모르겠다. 오랜 기간 잠복해 있다 모처럼 수면 위에 오른 논의가 잊히지 않길 바란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