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은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난데없이 비상계엄령을 발동했다. 이는 쿠데타, 내전, 반란, 전쟁, 폭동, 국가적 재난 등 비상사태로 인해 국가의 일상적인 치안 유지와 사법권 유지가 불가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원수 또는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의 동의 아래 군대를 동원해 치안 및 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를 말한다. 우리가 평소에 누려왔던 일상적인 생활이 군대의 통제를 받게 되는 만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발동한 계엄령은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 위헌적 행위였고 결국 국회로부터 해제 요구를 받았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물론 여당인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계엄령 사태를 성토하며 윤 대통령 탄핵 및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공수처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들도 계엄령과 관련해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다. 절대다수의 국민은 윤 대통령과 여당, 일부 군 지휘관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런데 교계 일각에선 여론과 동떨어진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계엄령을 옹호하고 되레 야당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이 적잖게 보인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이나 하야에도 반대하고 있다. 대체로 극우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이 교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교계 단톡방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계엄령 옹호 글과 허위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게재하고 있다. 단톡방 등에는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 교인들이 많음에도,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마치 윤 대통령을 사수하는 첨병들처럼 보인다.
일부 목회자들의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계엄령 이후 행한 이들의 설교를 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본질을 피해 가는 애매함을 보이거나 양비론을 펼친다. 위정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거나 이를 중심으로 조속히 국정이 안정돼야 한다는 말도 한다. 이들 목회자 중에는 평소에도 편향된 정치관을 드러낸 경우가 있었다.
현재 국내 개신교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좋지 않다. 불교나 가톨릭은 긍정적 평가가 우세한 데 비해 개신교는 부정적 평가가 더 많다. 부분적으로 대중의 편견이 작용한 탓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내 개신교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고 여겨진다.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이 대중의 눈높이와 괴리된 모습들을 자주 보이면서 부정적 평가를 양산했다.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서 고립을 자초하곤 했다. 이번 계엄령 사태에서 목격된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의 행태는 기존의 부정적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국내 개신교 안에는 대중의 눈높이에 부합하고 정상적인 길을 가려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소수에 불과한 사람들로 인해 전체가 비난을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니 대중의 부정적 시선에 억울함과 서러움을 토로하는 목회자와 교인들도 많은 것이다.
상황이 험난할수록 교계는 더 열심히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국 남침례교 총회장을 역임한 JD 그리어는 저서인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에서 목회자와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 세상과 조우하라고 강조했다. 설령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더욱 가열하게 나서라고 했다. 그것이 사명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각자가 맡은 바 사명을 깨닫고 다시금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