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나침반이 된 성경말씀] 노사분규 중 영성훈련으로 마음 열다

입력 2024-12-14 00:4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2000년은 지금의 정국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CBS 기독교방송(CBS)의 9개월 장기 파업이 시작된 해다. 분규가 있기 전 평소 건강하던 내가 몹시 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 3차 진료병원까지 모두 수술 소견이 나와 교회에 기도 부탁을 했더니 사모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2주만 작정기도 할래요?” 워킹맘에게 이 무슨 부담스러운 제안인가. 나는 이리저리 핑계를 댔다. 그런데 전화를 끊자마자 문득 양심이 찔렸다. ‘회사가 이렇게 어려운데 뭐가 더 중한가.’ 생애 처음 작정기도란 걸 시작은 했지만 이기적인 동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그런데 막상 내 입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나왔다. 방송 일이 바쁘다고 기도 생활을 등한시하던 나로선 희한한 경험이었다.

이에 나는 기도 제목을 바꿨다. 첫째는 CBS 전 직원의 영적인 무장, 둘째는 회사의 경영난 극복, 셋째는 내 수술이었다. 작정기도 첫날 교회 장의자에 앉아 CBS를 떠올리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상하게도 1시간 내내 울다 온 것 같은데 마음은 기쁨으로 채워졌다.

작정기도가 2주에서 1년으로 연장되는 사이 CBS는 분규에 휩싸였다. 파업 5개월째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노사는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 같았다. 이 시기 기도하던 중 ‘노조원에게 영성 훈련을 시키라’는 성령님의 감동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내 절망했다. 회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이며 악에 받친 노조원에게 누가 장소를 준단 말인가. 무엇보다 노조위원장은 무슨 수로 만난단 말인가. 당시 간부로서 방송 파행을 반대했던 나는 후배들에겐 원망의 대상이었다.

파업 장기화로 위기감이 고조되던 때라 전열을 가다듬을 기회로 삼을 생각이었을까. 뜻밖에도 노조위원장은 만나자는 제안을 수락했다. 노조원 200명이 수양관에 집결했고 성령님은 2박 3일간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은혜를 받은 이들이 말씀에 마음을 열고 회개하면서 매시간이 눈물바다였다. CBS가 이례적으로 파업 중 영성훈련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삿거리였다. 이후 파업 양상은 구호가 아닌 예배로 바꿨다. PD와 기자 등 여러 직원이 교회에 등록했다는 소식도 속속 들려왔다.

기도 제목 세 가지도 하나님 뜻대로 다 이뤄졌다. CBS 직원의 마음이 그분께 집중됐고 비상방송 중임에도 광고 수익은 넘쳤다. 작정기도 한 달 후 수술로 찾아간 병원에선 의료진이 정상 판정을 내렸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결국 하나님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해 당신의 뜻을 이룬다.

<약력> △CBS기독교방송 전 TV본부장 △한일연합선교회(WGN) 이사 △거룩한빛광성교회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