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의해 불과 2주 만에 축출되자 시리아와 관련된 각국 정부가 당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9일(현지시간) 반군의 주축 세력 하야트타흐리트알샴(HTS)의 공세에 아사드 정권이 급격히 무너지자 미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몇 년 사이 관리해온 외교적 위기 목록에 시리아를 올려두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와 관련해선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의 준동을 막기 위한 공습 정도로만 대처해온 것이다.
상황이 급변하자 미국은 고위 외교관들을 튀르키예, 요르단, 이라크 등으로 급파해 시리아 문제 논의에 나섰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스라엘로 달려갔다. 그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휴전 문제뿐 아니라 시리아 상황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도 혼란을 수습할 뾰족한 수는 없는 실정이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시리아인들이 주도해야 할 과정이며 이 지역의 다른 어떤 국가도 주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10여년 전인 시리아 내전 초기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내놨던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발언이다.
혼란에 빠진 것은 미국뿐이 아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관계 정상화를 이끌며 중동 내 영향력을 확대하던 중국도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한 아사드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하는 등 시리아에 공을 들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아사드 정권이 갑자기 무너지자 중국 외교부는 “시리아의 미래와 운명은 시리아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로이터통신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중국의 중동 외교 야망에 타격을 입혔고 중국 전략의 한계를 드러냈다”며 “중국 전문가·외교관들은 시리아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중국 정부가 기다릴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아사드 정권의 최대 후원국이던 이란과 러시아는 이번 사태의 최대 패배자로 꼽힌다. 이란은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이어 아사드 정권까지 무너지며 이스라엘을 포위하기 위해 수십년간 구축해온 ‘저항의 축’이 사실상 와해 상태에 놓였다. 러시아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반군과 교섭을 시도하는 등 시리아 내 해·공군 기지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는 해당 기지를 잃을 경우 지중해로 접근하는 통로를 잃게 된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