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정국’ 직격탄 맞은 두산… 계열사 분할·합병안 무산

입력 2024-12-11 01:56 수정 2024-12-11 15:52
연합뉴스

두산그룹 계열사 분할·합병안이 계엄 사태발 주가 폭락으로 물 건너갔다. 정치권 돌발 변수의 불똥이 주식시장을 매개로 기업 경영에까지 튄 것이다. 두산은 계열사 조직 개편을 추진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주가가 일정 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미리 약속한 가격에 주식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증시가 주저앉으면서 두 회사의 주가가 두산 측 매수 예정가를 크게 밑돌았고, 이에 부담을 느낀 두산 측은 사업 개편 계획을 접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10일 각각 임시 이사회를 열고 12일로 예정돼 있던 양사의 임시 주주총회를 철회했다. 양사는 임시 주총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로 넘기는 분할·합병안을 의결할 예정이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주주 서한을 통해 “갑작스러운 외부환경 변화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찬성 입장이었던 주주 가운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해 반대 또는 불참으로 선회한 주주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이날 두산에너빌리티 종가는 1만7180원으로 3일 종가 2만1150원 대비 약 19% 하락했다. 두산 측의 매수 예정가인 2만890원을 약 18% 밑도는 수준이다. 두산로보틱스 주식도 이날 5만2200원에 거래를 마쳐 두산 측 매수 예정가(8만472원)에 한참 못 미쳤다.

주가 폭락은 특히 두산에너빌리티 임시 주총 전망을 어둡게 했다. 애초에 두산로보틱스는 최대주주인 ㈜두산 지분이 약 68%로 분할·합병 안건의 주총 통과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두산에너빌리티는 최대주주인 ㈜두산과 특수관계인 지분이 약 30%에 그쳐 지분 약 65%를 들고 있는 소액주주와 지분 약 7%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지지가 필요했다.

국민연금은 10일 기준 주가가 두산 측 주식 매수 예정가액보다 높을 때만 분할·합병 안건에 찬성하겠다고 전날 밝힌 바 있다. 소액주주 역시 시세보다 더 비싼 값에 주식을 처분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활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 대표는 “주가 하락으로 분할·합병 안건의 가결 요건 충족 여부가 불확실해지고, 애초 예상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6000억원을 초과할 때 분할·합병 계약을 해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상 기권 의사를 밝힌 국민연금 한곳만으로도 주식매수청구권 규모 한도를 훌쩍 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그룹 개편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두산에너빌리티의 유동성 확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산 측이 무리하게 주식 매수에 자금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두산의 합병 무산은 지난 2014년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추진 사례와 닮아있다. 당시에도 합병에 반대하며 소유한 주식을 되사 달라고 요구한 주주가 많아 좌초됐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