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가 ‘계획된 작업’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게 하는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계엄 이틀 전인 지난 1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확보하라는 임무가 하달됐다고 뒤늦게 폭로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같은 날 북한 도발을 이유로 “지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실도 방첩사 수뇌부 증언으로 공개됐다. 김 전 장관이 과천 선관위 청사에 진입한 정보사령부 지휘부에 계엄 당일 오전 ‘야간 임무 대기’ 지시를 내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10일 전체회의를 열고 방첩사·정보사 등 계엄 작전 수행에 투입된 부대 지휘부 관계자들을 불러 비상계엄의 사전 계획 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곽 전 사령관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제가 받은 임무는 국회, 선관위(과천청사·관악청사·수원 선거연수원), 민주당사,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꽃’ 등 6개 지역 확보였다”며 “임무를 김 전 장관으로부터 유선 비화폰(보안 처리된 전화)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곽 전 사령관은 “머릿속으로만 ‘아 정말 되면 이렇게 해야지’하고 구상 정도만 하다가 차마 그 말을 예하 여단장들에게 하지 않았다”면서 부하들에게는 계엄 당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저는 이게 비상계엄이 아니고 당시 전방에서 문제가 생기는 가능성을 더 염두에 두는 상황 인식이 더 컸다”고 주장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사전에 계엄 관련 임무를 받은 점을 진술하지 않은 사실도 털어놨다.
방첩사령관 직무대리로 여 전 사령관 대신 출석한 이경민 참모장은 안규백 민주당 의원의 “12월 1일 여 전 사령관이 북한 도발이 임박했다는 빌미로 대령급 실장들에게 통신상으로 지시 대기를 내렸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참모장은 계엄 선포 당일인 3일 오전에는 “북한 오물·쓰레기 풍선 상황이 심각하니 음주 자제와 통신축선 대기를 철저히 하라”는 여 전 사령관의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여 전 사령관의 이 같은 지시는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대남 풍선을 띄운 건 지난달 29일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여 전 사령관이 계엄과 관련해 사전 준비 지시를 받은 뒤 대비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여 전 사령관은 전날 입장문을 내 “방첩사가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선관위에 투입된 정보사도 계엄 선포 직전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서 3일 오전 “이번 주에 야간 임무를 부여할 수 있으니 한 개 팀 정도를 편성해 대기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이때까지 투입 장소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김 전 장관의 지시는 점차 구체화됐다. 문 사령관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당일 “야간 임무를 줄 수 있다”고 투입 시점을 좁혔고, 곧이어 선관위가 위치한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인근에 오후 9시쯤 대기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고 한다. 문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서) 저희가 받은 임무는 선관위에 가서 전산실 위치를 확인하고 지키고 있다가 다른 팀이 오면 인계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구자창 정우진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