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권력의 공백 상태
혼란없이 신속히 메워야 할 때
국힘 제시한 질서 있는 퇴진안
분노한 국민 동의 얻기 어려워
헌법 명시된 규정 그대로 따라
탄핵소추 표결 참여가 정도다
혼란없이 신속히 메워야 할 때
국힘 제시한 질서 있는 퇴진안
분노한 국민 동의 얻기 어려워
헌법 명시된 규정 그대로 따라
탄핵소추 표결 참여가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불확실성이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반국가세력 척결을 앞세운 계엄 선포는 반세기 전 군사독재의 답습일 뿐 어디서도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왜 느닷없이 정치적 자폭 단추를 눌렀는지, 이렇게 엉성한 친위 쿠데타를 누구와 계획했고, 실행에 이르기까지 어떤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증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런 의문에 답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사실관계는 결국 수사를 통해 확정될 것이고, 혹시 숨겨진 비사가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남김 없이 공개될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의 공백을 혼란 없이 신속히 메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거부하며 국민의힘이 제시한 방안은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이다. 그런데 이 말은 처음이 아니다. 8년 전인 2016년 11월 2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됐고, 국회 국정조사 개시(11월 30일)와 특별검사 임명(12월 2일)을 앞둔 때였다. “자진사퇴는 없다”고 버텼던 박 전 대통령은 친박 핵심 의원들이 청와대를 찾아가 ‘명예로운 퇴진’을 읍소하자 마지못해 입장을 바꿨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대국민담화 직후 ‘헌법을 바꾸고, 개정 헌법을 근거로 대통령이 조기 사퇴한다’는 로드맵을 확정했고, 이를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불렀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퇴진 시기와 방식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국회로 넘기고 개헌 논쟁을 일으켜 당장의 탄핵 국면을 모면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만 보였을 뿐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수습책에 동의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이 내놓은 질서 있는 퇴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3~4개월 뒤 윤 대통령이 퇴진하고 그로부터 60일 뒤 대선을 치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당내 정국안정화TF가 마련한 이 대책을 2차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에 앞서 확정할 계획이다. 그동안 책임총리제, 임기 단축 개헌, 비상거국내각 구성 같은 여러 방안이 논의됐지만 어느 것 하나 마땅치 않았다. 책임총리제는 헌법과 법률적 근거가 아예 없고, 개헌과 거국내각은 야당의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
결국 윤 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에 사퇴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신하다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확정판결 이후 윤 대통령의 사퇴 발표가 나온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수습책이 될 것이다. 탄핵 소추가 이뤄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와 시간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으면서 탄핵 자체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윤 대통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직무배제 발표 이후에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임을 재가했다. 어정쩡한 봉합이 당장 파열음을 낸 것이다.
이런 정치공학적 접근은 반발과 저항만 부를 뿐이다. 식물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조금이라도 늘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확인하겠다는 계산만 보이는데 국민이 동의할 리 없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한 명씩 탄핵 표결 참여 입장을 밝히는 것은 민심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게다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경하다. 윤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탄핵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국민의힘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구속되면 자연스럽게 총리가 나설 수 있다는 ‘묘수’까지 나왔다. 윤 대통령이 수모를 참고 버티면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코미디 시나리오다.
국민의힘은 지금 ‘탄핵은 보수의 궤멸’이라는 명분을 앞세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당이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트라우마가 국민의힘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 거부라는 악수를 낳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
헌법에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 적시돼 있다. 이를 따르는 것보다 더 질서 있는 퇴진은 없다. 보수의 재건은 장기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돼야 한다. 탄핵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하면 태극기부대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건 진짜 보수 궤멸이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