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7) 재능 알아본 사장님 “경주야, 이제 진짜 골프장 가자”

입력 2024-12-11 03:07
최경주 장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라운딩을 돈 정식 골프장인 전남 곡성군 광주컨트리클럽 전경. 광주컨트리클럽 제공

우리 중에는 본인 클럽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클럽 한 세트를 나눠 썼다. 샷 연습을 한 번이라도 더 하기 위해 한 홀에서 공을 두세 번씩 날리기도 했다. 첫날엔 108타를 쳤다. 9홀을 두 번 돌았다. 두 번째 나갔을 때는 10타를 줄인 98타였다. 사부님은 나한테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셨다.

“경주야, 이제 진짜 골프장에 가자.”

그 말을 들은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드디어 제대로 된 골프장 잔디를 밟는다는 사실에 밤잠 이루지 못했다. 그날부터 연습량을 늘렸다. 연습장에서 공을 멀리 쳐 내면 줍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물망에 바짝 다가서서 스윙 연습을 했다.

한 달이 지났다. “내일 새벽 6시에 티오프 할겨. 옥과까지 갈라믄 3시간 걸리니께 새벽 3시에는 출발해야 헌다. 알겄지?” 드디어 광주 컨트리클럽에 가는 날이 다가왔다. 전남 유일의 18홀 코스 골프장이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너무 설레서 자정을 훌쩍 넘겨서 간신히 잠들었다.

1986년 5월 초 내 생애 처음으로 정규 코스 티잉그라운드에 섰다. 어렵게 나간 라운딩이라 한 번만 돌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컸다. 다행히 당시에는 18홀 라운딩을 마친 뒤에도 원한다면 플레이를 더 할 수 있었다. 한국에는 이제 막 골프가 알려지기 시작한 때라 클럽 회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라운딩을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골프를 치다 보니 힘든 줄도 몰랐다.

컨트리클럽을 다녀온 후 나는 그린피를 벌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골프 연습장에 오는 손님들의 차를 세차하기도 하고 클럽을 닦거나 잔심부름을 하면서 용돈을 벌었다. 집에서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고 품삯을 나눠 받기도 했다. 나는 개인 클럽이 없어 연습장에 오는 손님들이 연습할 때 옆에서 눈치껏 빌려 쓰곤 했다. 연습하다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실 때까지 싹 고쳐놓을 게라”하고 넉살 좋게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를 혼내거나 하는 어른은 없었다.

“어허, 이놈 봐라. 재밌는 녀석이야. 어디 이거 한번 쳐 봐라.” 나중에는 손님들이 오랫동안 안 쓰고 보관해 두었던 채를 찾아 주면서 쳐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나한테서 프로 골퍼의 싹을 본 사부님은 고민 끝에 연습장에 오는 유지들에게 부탁하셨다. “경주, 갸가 공을 곧잘 치는데 말입니다. 필드에 자주 내보내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서 사장님이 가실 때 한 번씩 그린피를 대 주시면 안 되겠소?”

“그라제. 언제 우리 갈 때 데꼬 갈랑게. 그때 준비하라 하소.”

그렇게 해서 사장님들이 돌아가면서 나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지들이 어떻게 하면 최경주를 도와줄 수 있을까 의논하기도 했다. 쉰 넘은 큰 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이 모여 팀이 만들어졌다. 당시 골프 재미에 빠져서 틈만 나면 컨트리클럽을 찾으신 이분들 덕분에 신이 난 건 나였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