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고려청자, ‘오묘한 푸른 빛’만큼 아름다운 형상미

입력 2024-12-11 00:47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전’에서 관람객들이 ‘청자 어룡모양 주자’(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감상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 원앙을 본 뜬 향로 두 점이 있다. 하나는 고려시대 장인이 12세기에 제작한 ‘청자 원앙모양 향로뚜껑’. 연밥 위에 앉은 수컷 원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부리와 날개를 단순화시킨 형태미가 아주 세련됐다. 날개와 목, 몸통은 각기 다른 선묘를 해서 사실감을 한껏 살렸고, 그러면서도 입을 살짝 벌린 부리의 표현을 통해 화룡점정을 찍듯 사랑에 빠진 새의 행복감을 유감없이 묘사했다.

고려의 ‘청자 원앙모양 향로뚜껑’(위 사진·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이와 흡사한 북송의 ‘청자 연꽃모양 향로 조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다른 하나는 비슷한 시기 중국 북송의 황실 가마인 여요(汝窯)에서 제작한 것인데, 조형적인 비례가 어색하다. 조각적인 아름다움에서 확실히 고려가 ‘청출어람’처럼 청자 기술을 전수해준 북송을 뛰어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보급 고려청자를 총출동시킨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전’을 연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청자 사자모양 향로’ 등 국보 11건, ‘청자 귀룡모양 주자’를 비롯한 보물 9건 등 국내 25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 중국·미국·일본 등 해외 3개국 4개 기관의 소장품 총 274건이 쏟아져 나왔다. 고려청자 대표 선수들을 대거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이면서 무엇보다 청자를 공예를 넘어 ‘조각 예술’로 조명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상형 청자는 사자, 원숭이, 오리, 사자, 연꽃, 복숭아, 석류, 죽순, 참외, 조롱박 등 인물과 동·식물 형상을 따라 빚은 청자를 말한다. 주전자, 꽃병, 향로 등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형태를 깎고 빚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했다.

지금까지 고려청자의 미라면 중국의 불투명한 ‘비색(秘色)’과는 다른 투명한 회청색의 ‘비색(翡色·물총새 깃털 색)’, 그리고 중국에 없는 독자적인 기법인 상감청자 두 가지에 주목해왔다.

이번에는 고려청자가 갖는 형상 자체의 조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힘을 썼다. 그래서 전시장 초입에는 ‘청자 어룡모양 주자’ 한 점만을 별도 공간에 전시했다. 용과 물고기를 합친 상상의 동물인 어룡의 자태를 정면과 측면, 뒷면까지 사방을 돌며 감상할 수 있다.

사실 12세기 초반 고려의 상형청자는 기형, 기종, 번조 기법에서 북송 황실 자기를 생산하던 허난성 여요 자기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독창적 해석은 종주국인 중국을 뛰어넘었다. 이는 이번 전시에 나온 비슷한 형태의 송나라 자기와 고려의 자기를 비교해 감상하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청자 원양모양 향로 뚜껑도 그렇지만 ‘참외모양 병’ 역시 비슷한 기형이 함께 나왔는데, 중국과 고려의 미감 차이를 알 수 있다. 송나라 경덕진 가마에서 제작된 참외모양 병은 형태가 풍만하면서 다소 투박하다면 고려의 것은 날렵하면서도 구연부까지 잎 모양으로 처리하는 등 끝까지 우아함을 추구한다.

북송 황실의 여요 자기 기술은 민간 유출이 엄격히 통제됐다고 한다. 그런 여요 자기 기술이 어떻게 고려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이애령 학예연구실장은 “북송 휘종과 고려 예종의 우호적인 외교 관계에 힘입어 상호 기술 전파와 기술 공유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 북송 황실의 하사품에 여요 자기 모본이 포함되거나 여요 자기의 특징을 그림과 글로 묘사한 도안이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고려 상형청자의 아름다움을 기종별로 살펴볼 수 있는 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 섹션이다. 상상의 동물을 비롯해 고려 사람들이 사랑하고 벗처럼 가까이 두고자 했던 다양한 동물과 식물을 소재로 한 명품 상형청자를 엄선해 소개한다. 북송 휘종이 1123년에 고려에 파견한 사신 서긍(1091~1153)은 “산예출향”, 즉 “사자모양 청자 향로가 뛰어나다”고 감탄했다. 그가 감탄사를 연발할 상형청자를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형상미를 추구하는 한민족의 DNA를 좇아 삼국시대인 3~6세기 신라와 가야 등에서 만든 상형 토기와 토우(土偶) 장식 토기를 소개해 깊이를 더한다. 내년 3월 3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