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력 2024-12-11 00:35

떠들썩하게 교정을 누비던 반팔 차림의 학생들이 두꺼운 외투를 입고 동동걸음을 친다. 학생들은 온기를 찾아 건물 안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휑한 교정에는 인기척 하나 없다. 어느새 한 학기가 훌쩍 지나 남은 강의시간은 5분 남짓,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하늘은 눅눅하게 젖은 회색빛이고 성난 바람은 매섭게 낙엽을 치고 간다. 실은 선생과 제자 관계를 넘어 애정을 담아 전하려던 인사가 있었다. 꿈꿔왔던 미래를 마음껏 그려내라고, 간혹 세상이 상처를 주더라도 그건 아주 잠깐의 일이니 주눅 들지 말고 당차게 살라고, 최선의 삶을 살다 보면 인생의 아름다움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앳된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와 지친 눈빛을 보고서는 마음이 심란해져 말을 삼켰다. 아이들의 미래였을 오늘의 세상이 경쟁과 갈등, 혼란으로 가득한 데에는 앞서 세상에 온 나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는 웃어른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 걸까. 청년기에 들어선 학생들을 바라보는 내 눈에 미안함이 어려 있음을 자각했을 때의 마음은 아프고 슬펐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 학기 동안 고마웠다고, 방학 즐겁게 보내라는 상투적인 인사로 강의를 마쳤는데, 묵은 체증처럼 가슴에 얹힌 감정이 지긋하게 명치를 누른다. 건네고 싶었던 진심을 노랫말에 실어 밤 깊도록 읊조린다. 많은 일이 휘몰아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며 사랑할 우리를 위해.

돌고 돌아 제자리에/ 남겨지게 되더라도/ 나를 아는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 그대여/ 사랑하길 멈추지 마요/ 가시덤불 위 힘들어도/ 지금까지 받은 사랑 적어 보여도/ 그대는 될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하는 길이 있지/ 만약이란 두려움을/ 걷어내는 과정 속에/ 그대여/ 사랑하길 겁내지 마요(알레프와 밍기뉴,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