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詩로 쓰는 성경 인물] <20> 갈렙

입력 2024-12-10 03:05

한 번도 뒤처져 본 적 없었지만
언약의 장막 뒤에서 칼과 창으로 서시를 쓴 자
헤브론 산지를 향해
만년 청춘을 외치며 달려간 잠들지 않는 심장
자그만 실패에도 무너지고 좌절하는
콘크리트 도시 거주자들의 나약한 가슴에
꿈과 희망의 불꽃으로 꽂히는 은빛 비수
여호수아, 그대를 볼 때마다
다시 나의 무뎌진 날을 세운다
흐려진 눈빛에 연둣빛 채색을 차오르게 하고
산처럼 두 무릎을 일으켜 세운다
아, 헤브론 산지는
여전히 눈 덮인 설산이다
저 눈밭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떠난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처연하고 슬픈가
나는 2인자였지만 내 자녀는
1인자의 발자국을 찍었다.

소강석 시인·새에덴교회 목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2인자의 자리가 아닐까. 지혜로운 2인자는 1인자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마오쩌둥(毛澤東) 앞에서 보고할 때 무릎으로 기었다고 알려져 있다. 모세가 팔레스타인 남부 가데스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낸 척후병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긍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시인은 여호수아 다음의 2인자 갈렙을 두고 ‘만년 청춘을 외치며 달려간 잠들지 않는 심장’이라 일렀다. 그 믿음으로 인해 갈렙은 자손들과 함께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민 13~14)을 상으로 받았다. 시인이 평가한 갈렙은 여호수아를 보며 자신의 ‘무뎌진 날’을 다시 세웠지만 그 지위를 질투하지 않았다. 이는 실상 쉽지 않은 절제와 금도(襟度)를 요하는 태도다. 그랬기에 그 자녀는 ‘1인자의 발자국을 찍었다’는 것이 시인의 해명이다.

-해설 : 김종회 교수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