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생산·유통·설치·촬영·판매
산업 체인들 분리돼 단속 애먹고
책임지는 숙박업소도 거의 없어
“사생활 침해죄 신설해야” 지적도
산업 체인들 분리돼 단속 애먹고
책임지는 숙박업소도 거의 없어
“사생활 침해죄 신설해야” 지적도
중국의 몰래카메라 범죄가 ‘장비생산-유통-설치대행-불법촬영-판매대행’ 등으로 검은 산업체인을 형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범행이 암호화된 다크웹에서 이뤄져 당국도 단속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의 n번방 사건처럼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관영 신징보와 난펑촹은 최근 탐사보도를 통해 중국에서 몰카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구조화되고 산업체인화된 범죄 양상에서 찾았다.
중국에서 몰카용 장비 판매는 불법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핀홀카메라’ ‘몰래카메라’ 등은 원천적으로 검색이 불가능하지만 유사 검색어를 이용하면 우회할 수 있다. 판매업자들은 불법적 용도에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상세 설명에선 은밀성을 강조하며 ‘비밀배송’을 명시해놓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몰카용 장비는 다양했다. 생수병 뚜껑 크기인 탄두형 카메라는 배터리만으로 최장 900일간 대기가 가능하고 메모리카드나 클라우드에 영상을 저장할 수 있었다. 콩알 크기의 모듈 카메라는 렌즈 직경이 2㎜에 불과한 데도 무선 연결이 가능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시청이 가능했다. 머리카락 굵기의 제품이나 숙소의 전원에 연결해 시간 제한 없이 작동하는 제품도 있었다.
일부 업자는 주문을 받아 콘센트, 디퓨저, 물컵, 면도기, 샹들리에, 종이팩, 충전기, 자동차 키, 시계 등 일상 용품에 모듈형 카메라를 장착해 판매했다. 이런 장비의 가격은 100위안(약 1만9500원)부터 5000위안(98만원) 이상까지 다양했는데 원가는 5분의 1정도에 불과해 업자들은 폭리를 얻고 있었다.
몰카범들은 장비 설치공을 따로 모집했다. 설치공은 일정한 보증금을 내고 우편으로 장비를 받은 뒤 호텔에 투숙해 5~6개의 몰카를 설치한다. 몰카범이 화상으로 설치 방법과 위치 등을 알려주고 작동 여부를 원격으로 확인한다. 작업이 끝나면 설치공은 보증금과 숙박비를 돌려받고 설치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8000위안(157만원)에서 1만 위안(195만원)으로 베이징 등 대도시 근로자 평균 월급보다 많다. 형사 처벌이 따르는 범죄 행위여서 수수료가 많을 수밖에 없다.
다크웹에선 각각 수천에서 수만명이 가입된 10여개 그룹이 설치공을 모집 중이었다. 이들이 노리는 곳은 주로 투숙률이 높은 호텔이나 대학가 인근 숙박업소였다. 몰카범이 장비 설치에 응할 숙박업소를 모집하거나 집주인이 셋방이나 민박에 직접 장비를 설치한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설치된 몰카는 대기 상태로 있다가 손님이 투숙해 마스터키를 꽂거나 조명을 켜면 촬영을 시작한다.
범죄 수익은 이중으로 나온다. 실시간 시청 회원을 모집해 회비를 받거나 녹화한 영상을 사후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도 모두 다크웹에서 이뤄진다. 몰카 채널 5~6개를 한 세트로 시청하는 대가는 월 750위안(14만7000원)에서 1000위안(19만5000원)이었다. 실시간 시청에는 스마트폰에 합법적으로 설치 가능한 사물인터넷용 앱이 주로 이용됐다. 이런 앱에선 특정 카메라의 IP주소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영상을 볼 수 있다.
몰카범들은 매출의 15%를 수수료로 주겠다며 오프라인 판매대행도 모집했다. 몰카범으로부터 IP주소나 영상 시청 코드를 사들인 뒤 마진을 붙여 재판매하는 업자도 있다. 한 재판매업자는 하루 8900위안(175만원)의 매출을 올려 3000위안(59만원)의 수익을 거뒀다고 취재진에 말했다.
중국에선 2019년 몰카 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졌다. 저장성 공안이 항저우의 한 집주인이 세입자를 훔쳐본 사건을 수사하다 몰카 장비의 대량 생산·유통 단서를 잡고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몰카 장비의 설계-생산-2차생산-대리점으로 이어지는 4중의 검은 산업체인을 적발해 26명을 검거했다. 공안부가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해 관련 사범 350명을 검거하고 5500여대의 카메라를 압수했다.
하지만 이후 5년간 몰카 범죄는 다크웹을 타고 음지에서 더 번성했다. 투숙객이 숙박업소에서 몰카를 발견해 신고해도 설치범이 검거되는 경우는 드물다. 숙박업소가 책임을 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 허난성 카이펑시 인터넷보안대장 왕홍위는 CCTV와의 인터뷰에서 “숙박객이 몰래카메라를 찾아내도 현장에서 압수하는 정도에 그친다. 누가 장비를 설치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도청·도촬 방지 전문가인 샤오레이는 “몰카 범죄 단속이 어려운 이유는 카메라 생산, 설치, 영상 판매 등 산업체인이 모두 분리돼 있기 때문”이라며 “당국뿐 아니라 여러 당사자가 공동으로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난펑촹에 말했다.
저장대 디지털법치연구소 가오옌둥 부소장은 “현행법이 도청, 몰래 촬영, 타인의 사생활 유포 행위를 처벌하고 있지만 몰카 범죄를 억제하기엔 부족하다”면서 “사생활 침해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신징보에 말했다. 신징보는 숙박업소의 사생활 보호 책임 강화도 제안했다.
난펑촹은 “한국 n번방 같은 사건이 중국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