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경찰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며 “공수처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우리가 주체가 돼야 한다’며 압수수색, 출국금지 등을 앞다퉈 진행하며 경쟁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검찰과 경찰이 수사 대상자들 관계에 있어 공정성 논란이 있는 점을 고려해 이첩요청권을 행사했다”며 “공수처는 누구에게도 수사에 대해 보고하거나 지휘받지 않는 독립 수사기관”이라고 밝혔다. 전날 검찰과 경찰이 수사 주도권을 놓고 기싸움을 벌인 데 이어 공수처까지 가세한 모양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수사 TF에 공수처 수사 인력 전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차장은 “채상병 수사는 진행되지만 인력상 소환조사는 다소 미룰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수처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 등 주요 수사를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수사에 인력을 전원 투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과 경찰은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기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사건 당사자의 신병과 증거물을 각 수사기관이 따로따로 확보하는 일도 벌어졌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진술은 검찰이 확보했다. 그의 휴대전화, PC, 노트북 등 증거물은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검찰과 경찰 양쪽에서 소환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수사기관 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윤 대통령 수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사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9일 오전 ‘윤 대통령 출국금지와 긴급체포를 검토하겠다’고 했고, 공수처는 같은 날 오후 윤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를 신청해 법무부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법원에선 중복 수사를 이유로 각 기관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등이 기각되기도 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국회에서 “서로가 수사권을 주장하는 비정상적 상황”이라며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지는 (법원)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이 사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서로 다른 기관이 확보한 증언과 증거물은 결국 하나의 수사 주체가 일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국무총리 등 상위 기관이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