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로 정치 혼란이 극심해지면서 한국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내 주가지수와 원화가치는 계엄 파문 이후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여행 자제령과 소비 위축 등으로 관광, 유통업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유일한 경제 버팀목인 수출도 증가율 둔화세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정치 불안이 겹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계엄 사태가 초래한 정치권 대립이 불가피하다 해도 경제와 민생만큼은 정부와 국회가 불씨를 살리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해야 한다.
9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2400선과 650선이 붕괴하며 연중 최저치를 새로 썼다. 코스닥(627.01)의 경우 4년7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은 계엄 선포 이튿날인 4일 이후 144조원이 사라졌다. 달러당 원화값(1437.10원)은 지난주 이후 이날까지 36원이나 급등(원화가치 하락)했다. 자본 이탈세가 심상찮은 분위기다.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환율 1500원대도 배제하지 못한다. 과거 이 정도로 원화가치가 추락한 건 외환·금융위기 등 외부의 대형 위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롯이 국내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이어서 더욱 뼈아프다.
외부 시선도 싸늘해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피치는 한국의 정치 위기가 장기화하면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비교해 이번 사태의 리스크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2006년에는 중국 경기 호황이, 2017년에는 반도체 사이클의 상승세가 정치 불안을 극복하고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했지만 이번에는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라는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경제 악재를 해결하려면 예산과 정책의 신속한 집행이 필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우원식 국회의장을 찾아가 “대외 신인도 유지와 경제 안정을 위해 예산안의 조속한 확정이 필요하다”고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당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탄핵 없이는 예산 협의도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이번 사태에서 대통령의 거취 문제가 중요한 변수임은 분명하다. 다만 민생 경제가 정치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정당의 역할이다. 다행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날 “외환과 주식 시장은 지금 큰 충격을 받아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심각성에 공감을 표시했다. 정치적 계산은 내려놓고 한 발짝씩 양보해 여·야·정이 고통을 겪는 민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예산안과 반도체 특별법 등 경제 발전의 기틀이 될 법안들의 신속한 통과가 민생 경제 살리기의 시작이다. 정치 격변에도 경제에 소홀하지 않는 것이 국민과 해외의 신뢰를 얻는 길임을 잊지 말라.